[초동여담]꽃 선생님, '화사(花師)'

지난주 회사 근처에서 몇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그중 한 분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거기엔 이제 막 터지려 하는 산수유 꽃망울의 앙증맞은 모습이 있었다. "내가 그제부터 3일 내내 찍은 거예요. 이거 보세요, 하루하루가 다르죠. 언제쯤 몽우리가 터질까 날마다 기다려져요." 그날이 3일째였다는 말이었으니 며칠이 지난 오늘 그의 핸드폰에는 아마 일주일 넘게 날마다 찍은 산수유 사진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이 쉰을 훌쩍 넘긴 중년의 사내가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 동네 어귀에서,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거리에 불쑥 차를 세우고 내려서 핸드폰을 꺼내고는 마치 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산수유 꽃망울의 솜털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몇 개의 중견기업을 경영하느라 하루하루 일정이 꽉 짜여 있을 그로 하여금, 특히 요즘엔 회사 하나를 상장시키느라 여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쁘다는 그를, 무엇이 그런 그의 급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차에서 내리게 해서는 산수유 가지 위로 몸을 기울이게 하는가. 그 마음을 다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만, 꽃이 피는 소리와 봄이 오는 소리를 눈으로 들으려는 마음이라고만 간단히 얘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산수유 꽃망울이 제 몸을 세상 밖으로 내밀면서 봄을 보내오는 것을 경탄과 감사로 바라보는 마음이며, 그래서 작은 생명의 새악새악 숨소리를 들으려 자기의 숨소리를 애써 죽이는 마음이며,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초조하게 기다리는 어미닭이 있어야 하듯 애타게 바라봐 주는 마음이며, 생명의 진동을 자기 몸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며, 만물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도록 옷가슴을 여는 마음이며, 꽃망울 속에서 무한과 영원과 우주의 시간을 찾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또한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낸 여리지만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보내는 마음이며, 자기 자신도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인 것이며, 꽃이 그렇듯 자신도 나날이 새롭게 갱신(更新)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들, 60대건 50대건, 20대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그 모두를 한 친족으로, 한 영토의 동족으로 만들어주는 마음이다.  꽃은 그러니 선생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우리가 그 향내와 함께, 그 화사함과 함께, 또한 가르침을 들어야 할 선생, '화사(花師)'인 것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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