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체제에서 성장해 집권 공통점…리콴유는 ‘법치’로 청렴한 국가 만들어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체제에서 성장해 집권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구축한 것과 정반대의 독재체제를 이뤘다. 리콴유 총리와 박정희 대통령의 비슷한 점과 상반되는 측면을 살펴본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사진=블룸버그
리콴유 총리는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마지막 지도자였다. 리콴유(이하 리콴유로 표기)는 싱가포르를 지배한 영국에서 공부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다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만주군관학교에 이어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이하 박정희로 표기)는 쿠데타로 정권을 쥔 뒤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서 배운 방식으로 통치했다. 박정희 시대 한국은 군대에서 배출한 인력과 문화가 정치와 사회의 주류가 됐다. 리콴유는 영국의 법치주의를 싱가포르에서 구현했다. 세계에서 가장 법과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해, 체제에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소장(왼쪽)
쿠데타의 명분을 경제성장이라고 내세운 박정희는 급하게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특혜와 부패를 용인했다. 특혜는 한정된 투자재원을 배분하고 제도를 대상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혜는 그 반대급부로 뇌물을 낳았고 부패로 이어졌다. 리콴유는 1959년 정권을 출범시키면서 선언한 ‘청렴과 정직’을 변함없이 지켰다. 리콴유는 청렴을 정부 운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세워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엄격히 적용했다. 이를 위해 부패행위조사국을 설립해 운영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국가부패지수에서 아시아국가로는 유일하게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박정희와 리콴유는 2세가 각각 총리와 대통령에 올랐다는 점도 비슷하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吳作棟) 제1부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리콴유의 첫째 아들 리센룽(李顯龍)은 2004년 총리로 취임했다. 리센룽 총리는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친 뒤 총리에 올랐지만 권력을 세습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았다. 23일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1979년 자신이 권력의 수족으로 부린 조직인 중앙정보부의 책임자로부터 저격돼 62세에 세상을 뜬 박정희는 오명(汚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콴유는 한국을 여러 차례 찾았다. 박정희가 저격되기 이레 전인 1979년 10월 19일 박정희와 정상회담을 한다. 이날 정상회담 이후 열린 청와대 만찬에서 통역한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리콴유는 2000년에 써낸 회고록에서 박정희를 “금욕주의자처럼 보이고 날카로운 얼굴을 한 작지만 강단 있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리콴유는 “박정희는 만찬 자리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며 “20대인 딸이 영어로 대화가 계속 흘러가도록 했다”고 회고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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