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당시 실존인물의 삶과 사랑 그려내...스테파노 포다 연출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난 군인이었고 영광스럽게 죽음을 마주했는데 여기선 나를 비겁자라 하는군요. 난 문인이었소, 내 펜을 위선자들과 싸우는 사나운 무기로 삼았소. 내 목소리로 조국을 노래했소. 내 생은 마치 하얀 돛단배와도 같이 나아갔지요.(…) 난 배신자가 아니오. 죽여요. 하지만 내 명예는 빼앗지 마시오!"법정에 선 '안드레아 셰니에'가 재판관을 향해 소리친다. 두 손은 끈으로 결박돼있다. 그를 빙 둘러싼 채 자리에 앉아있던 수십 명의 군중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향한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억울하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실존인물 앙드레 셰니에(시인·1762~1794)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품에서는 이탈리아어 표기로 '안드레아 셰니에'라고 적는다). 법정은 이미 피고인 명단이 적힌 종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로 한바탕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베네(Bene·좋아)!" 한 장면이 끝나자 이탈리아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49)가 외쳤다. 마이크를 든 통역가가 "이 쪽에선 아주 잘하고 있어요"라고 배우들에게 전달한다. 스테파노 포다는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파격적이고 창조적인 연출 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는 연출가다. 이번 작품으로 첫 내한한 그는 디자인, 의상, 조명, 안무를 모두 도맡아 무대를 책임진다. 무대 위에 설치될 한껏 과장된 샹들리에는 당시 귀족들의 사치를 보여주고, 거대한 거미상은 민중들의 척박한 상황을 상징한다.
지난 4일 연습실 현장. 3막 하이라이트 재판장 장면의 연습이 한창이다.
4일 오후에 찾은 예술의전당 연습실 현장에서는 총 4막의 공연 중 3막 하이라이트 부문 연습이 한창이었다. 성악가, 무용수, 합창단 등 100여명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꽃샘추위마저 달아나게 했다. 프랑스 혁명에 가담했지만 음모에 휩쓸려 재판장에 서게 된 '안드레아 셰니에', 셰니에를 구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 백작의 딸이자 그의 연인 '막달레나', 막달레나에 대한 연정으로 셰니에를 위기에 빠뜨리는 '제라르' 등 주인공들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특히 막달레나 가문의 하인이었다가 혁명정부의 간부가 된 제라르는 막달레나를 차지하려는 욕망과 한때 존경했던 셰니에를 없애려는 자신의 비열한 태도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제라르는 마침내 자신이 셰니에를 파멸시키기 위해 쓴 기소장이 거짓이라는 양심선언을 하고, 진실을 알게 된 군중들은 이제 제라르에게 등을 돌린다. 구깃구깃 접은 종이 뭉치와 야유가 제라르에게 날아온다. "'왜 군중들이 종이를 던질까요? 여러분들이 리액션을 크게 하셔야 관객들이 이제는 '제라르'가 적이 됐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 믿었던 대통령이 부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뭐? 대통령이 부패했다고? 이럴 때의 반응인 거죠." 포다가 배우들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제라르' 역을 맡은 바리톤 한명원(37)이 "아니, 막둥이가 친일파였다니?"라며 상황을 재해석하자 군중석에 앉은 배우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안드레아 셰니에' 공연 장면
국립오페라단이 작품 '안드레아 셰니에'를 공연하는 것은 1962년 창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국내에서의 공연은 드문 편이었다. 앙드레 셰니에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진보적 사상을 전파한 시인이었으나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32세의 나이에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강렬한 음악과 극적이면서도 탄탄한 드라마가 일품으로 꼽힌다.오케스트라가 없는 피아노 반주에도 연습은 이어졌다. 재판장을 가득 메운 군중들이 자연스럽게 합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수십 명의 배우들이 종이를 줍고 펼치고 구겨서 던지는 연기를 반복했다. "섬세함을 더하고, 동작 하나에도 가치를 부여하세요. 연출가가 하라고 해서 한다는 마음을 버리세요." 포다의 요구는 계속됐다. 공연은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진행된다. 영화 '필라델피아'에 삽입돼 유명해진 막달레나의 아리아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다.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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