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러시아로부터 오는 5월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석할 것인지 여부는 관심을 두고 바라봐야 할 올해 최대 이슈 중 하나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참석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남북정상의 조우 혹은 회담 성사 여부가 박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수'가 너무 많아 판단이 쉽지 않다. 초대장을 받아놓고도 섣불리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참석 여부와 관련해 청와대는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 다른 5월 일정과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다소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모호한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지난 9일 국회에 출석해 "김 위원장의 참가가 대통령의 참가에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라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들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라는 '이벤트'를 제외하면 이 행사의 참석 혹은 불참은 미국과 러시아 간 균형외교의 시험대를 의미한다. 러시아는 지난 8일 한ㆍ러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 정상의 참석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정부 핵심 외교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등 총 두 번 정상회담을 가지며 대 러시아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한국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 기념식에 참석한 전례가 있어 마땅히 거절할 명분도 적다. 10년 단위로 열리는 이 행사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참석해 전승 60주년을 기념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불참 쪽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미국이 동맹국들의 '불참'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한국의 '중국경도론'이 미국에서 의심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결정을 박 대통령이 내리긴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불참 의사를 밝혔고, 백악관은 지난 10일 "미국의 동맹이란 차원에서 보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상의 '지침'을 내렸다. 김 위원장과의 조우 가능성은 고민의 폭을 더욱 넓힌다. 만나서 얻을 이익이 있느냐는 게 우선 고려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베일 속 인물인 김 위원장이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사안이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 역시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지만 주인공은 김 위원장일 가능성이 더 높다. 통일대박론을 주창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서울이나 평양도 아닌, 제3국에서의 자연스런 만남까지 회피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중대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참석을 기정사실화 했다지만 김 위원장이 갑작스레 러시아 방문을 취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은 당장의 고민을 덜 수 있겠지만 유사한 사안이 불과 4달 뒤 다시 연출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박 대통령을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2차대전 종전 기념행사, 즉 항일전쟁승리 기념일 행사에 초청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 광복 70주년이기도 한 올해를 한중이 공동으로 기념하자는 제안도 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장으로 꾸며질 베이징 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일본은 포기하고 가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취임 후 2년 간 일본을 제외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의 친선외교 기반을 닦아온 박 대통령은 올해 5월과 9월 열리는 국제행사를 처리하는 행보를 통해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보다 구체적이며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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