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미근동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삼성 반도체 라인의 직업병 피해보상과 관련한 2차 조정기일이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김은별 기자] 삼성 반도체 라인의 직업병 피해보상을 두고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가족대책위원회(가족위)가 구체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위는 이날 서울 미근동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만나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세 가지 의제에 대한 본인들의 입장을 밝히고 청문 절차를 가졌다. 지금까지 이들은 회의방식이나 사과의 진정성 등을 문제 삼아 보상안 마련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조정위가 설립되면서 세 주체가 모두 속내를 드러내고 질의응답 시간도 갖게 됐다. 세 개 주체가 제안한 내용 중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인 부분은 보상 부분이다. 보상 대상과 보상 범위에 대해 제안 내용이 각자 차이를 보여 뜻을 하나로 모으려면 어떤 쪽이든 양보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뜻을 함께 했다. 구체적으로 설립할 기구나 예방대책에 대해서는 조금씩 달랐지만, 원칙적으로는 비슷한 의견을 제시해 금방 뜻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뇌종양·유방암까지 보상 기준에" VS 반올림 "모든 암, 불임, 희귀난치성 질환도 포함해야"=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골수종,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혈액암 5종에 추가로 뇌종양과 유방암 발생자까지 보상범위를 넓히기로 했다.백혈병을 포함한 모든 혈액암을 비롯해 뇌종양, 유방암까지 보상 기준에 포함시키기는 것은 물론 직무, 재직기간, 퇴직 및 발병시기 등도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인과 관계와 무관하게 전원에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골수종,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혈액암 5종은 1년 이상 재직, 퇴직 후 10년 이내 발병의 조건을 걸었고 뇌종양과 유방암의 경우 5년 이상 재직, 퇴직 후 10년 이내 발병한 경우로 기간을 설정했다. 퇴직자의 경우 20년 전 퇴직자까지 보상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1996년 1월 이후 퇴직한 모든 직원들이 보상검토대상에 포함되는 것이다. 백수현 삼성전자 전무는 "1년 재직, 퇴직 후 10년은 저희가 보상할 수 있는 최대치"라며 "20년 전에 퇴직한 경우 등으로 범위를 무한정 넓힐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경우 산재신청이나 다른 법적 절차를 통해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위의 경우 삼성전자의 보상범위에 신경계·생식계 암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해 주기를 원했다. 가족위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신경계 암과 생식계 암 발병자도 많았다는 것이 이유다. 재직기간의 경우 재직 중이라면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고, 퇴직 후일 경우에만 생산 공정에서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 후 12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로 기간을 잡길 원했다. 삼성전자가 협력업체와 사내 하청 소속은 보상 대상에는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힌 반면 가족위는 협력업체와 사내 하청 소속도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신고해 온 경우 조정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반올림은 삼성전자, 가족위보다 더 넓은 범위의 기준을 마련하고 보상하길 제안했다. 직접 생산라인 소속이 아니라도 계열사, 협력업체, 파견 노동자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될 수 있기를 원했다. 또한 3개월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누구나 보상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며 퇴직 이후 20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 보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상 질환 역시 모든 암과 전암성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등 중증 질환과 불임, 자연유산, 자녀의 선천적 기형이나 질환 등 생식보건 문제까지도 보상 대상에서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화학약품과 발병과의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병을 제한해 보상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보상 질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3개월 이상 삼성 사업장에서 일한 사람은 모두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소 무리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 삼성 측이 마련한 보상 기준이 어떤 경우에도 통용되는 일반적인 기준인 만큼, 특별한 경우까지 모두 포함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악용될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상액 책정과 관련해선 삼성전자는 사회 통념상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재해, 손해배상처럼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아 금액 책정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기존 산재보상 제도나 타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해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재발방지 대책·사과에는 3개 협상주체 의견 대부분 일치= 삼성전자, 가족위, 반올림 등 세가지 주체들은 재발방지 대책과 사과라는 두 가지 의제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은 의견을 같이 했다. 사업장에 대해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조사 기구가 필요하며, 피해자들에게는 사과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성분을 알 수 없는 공급사 영업비밀 물질에 대한 수시 샘플링 조사를 실시해 해당 물질이 유해성분을 포함했는지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현재도 법정 유해물질은 영업비밀에 포함할 수 없도록 관련 법이 규정하고 있어 특수 물질 도입시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보증서를 받아 서면으로 검증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서면이 아닌 수시 샘플링 조사로 유해성을 검증키로 한 것이다. 반올림이 제시한 종합진단, 외부감사 등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한편 삼성전자는 퇴사 이후 발병했을시 자료 미비로 근로자들이 산재신청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도 개선하기로 했다. 안전 및 보건과 관련한 자료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한 보존 기간보다 2배 늘리기로 한 것이다. 회사에 불리한 자료지만 근로자들을 위해 보존 하겠다는 것이다. 2년짜리 자료는 4년, 3년 자료는 6년, 5년 자료는 10년으로 늘리고 최대 30년 이내까지 보존할 계획이다. 가족위는 재발방지를 위해 삼성전자가 기금을 출연, 건강재단(가칭)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건강재단 구성원은 9인으로 이사장은 삼성전자측이 추천하고, 구성원 9명은 삼성과 가족위, 반올림이 골고루 추천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길 원했다. 삼성 측은 "현재 재단 설립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외에 반올림은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교섭을 통해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적인 노조가 일터의 안전보건이 제대로 관리되기 위한 필수 요소라는 얘기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이에 대해 "직업병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노조 설립까지 요구하는 것은 중복 요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 역시 "노조 설립 요구는 현 조정절차 과정에서는 무리한 요구"라며 "노조 설립 요구같은 경우 현 조정절차가 아닌 다른 기회에 얘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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