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이 양적 팽창만큼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소수 대기업에 의한 일부 민간 R&D는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에 이른 반면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의한 공공 R&D의 성과는 선진국에 여전히 못 미칠 뿐 아니라 최근 중국에까지 추월당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내용의 간략한 보고서를 어제 내놓았다. 가장 큰 원인은 공공 R&D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고위험ㆍ고가치 연구를 기피하고 지나치게 안전한 연구를 지향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고위험ㆍ고가치 연구란 실패할 위험은 높지만 성공하면 파급력과 보상이 큰 연구를 말한다. 연구자들이 안전한 연구에 치중하는 풍토는 각종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관료적 통제가 아직도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KDI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획 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본뜬 가칭 K-ARPA의 설립을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내세웠다. 이것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부터 주장해온 것이기도 하다. KDI의 지적대로 공공 R&D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을 더한 R&D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 우리나라는 몇 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쓴 논문이 세계의 다른 논문에서 얼마나 인용되는지는 나타내는 피인용 지표는 저조하다. 피인용 정도가 세계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논문(고피인용 논문)의 수를 연구자 1000명당으로 환산하면 우리는 12편 정도로 미국ㆍ영국ㆍ독일의 4~6분의 1에 불과하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사이에 고피인용 논문의 국가별 비중을 보면 중국은 2.4%에서 3.9%로 늘어난 데 비해 우리는 1.0%에서 1.2%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박근혜정부가 내건 창조경제도 공염불이다. 그러나 K-ARPA를 신설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자칫하면 그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예산낭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 K-ARPA의 내실 있는 조직화를 포함하여 뭔가 종합적인 대책을 더 늦기 전에 강구해야 한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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