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투스가 '히스토리아'를 쓸 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과거에 관한 기록들이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상상과 창작에 의지하여 사실들을 마구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스토리가 역사를 삼켰기에 헤로도투스는 난무하는 스토리들 속에서 팩트들을 꺼내서 삼엄한 진실의 정신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일리 있는 생각이며 중요한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 필요한 인식이었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옳은 생각은 아닐 수 있다. 그는 팩트에 대해 경직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팩트는 일의적이고 고형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다. 언론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나는, 그것을 깊이 실감해왔다. 팩트는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아니라, 입장과 관점의 문제이며, 해석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는 점 말이다. 관점에 따라 같은 팩트가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고, 그 의미가 전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날마다 발견한다. 물론 그것이, 팩트를 추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덜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팩트를 맹신하는 것보다 그것이 지닌 관점의 측면을 살피는 것이 지혜롭다는 얘기일 뿐이다.지나간 일의 경우, '팩트'는 더욱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지경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의 맥락들이 지워지고, 또 건망증과 기억의 누락이 개입해 '팩트'들은 이미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어려울 만큼 성긴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헤로도투스를 입에 올리며, 팩트와 팩트 사이에 숨어버린 '팩트'들을 결코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학자가 아닌 이야기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야기꾼들이 그 중간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고 치졸한 대중적 관심의 항문을 닦는 거라며 비난하여 스스로의 학문적 고결을 유지해왔다. 물론 이야기꾼들이 왜곡하고 어지럽혀온 역사적 사실들이 왜 없겠는가. 아니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학자들은 그 왜곡과 역사적 팩트의 혼선들을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망각의 심연'을 복원하려는 노력 전부를 비웃어온 혐의가 있다. 이 점도 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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