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이공계 '지식 어벤져스', 첫발 내딛는다

강성모 카이스트 총장

만화 속 영웅들이 스크린에 대거 등장해 세계적 흥행몰이를 한 영화가 있다. 미국의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어벤져스다. 혼자 나와도 영화 한 편은 거뜬히 소화해 내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의 슈퍼 히어로들이 한 화면에 등장했다. 히어로 물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종합선물세트나 다를 바 없는 구성이다. 게다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가진 영웅들이 서로 다투고 어울리며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능력자들이 부딪히며 창출하는 시너지와 폭발하는 쾌감에 사람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혼자여도 훌륭하지만 한데 모였을 때 더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은 영웅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발표되는 논문들을 살펴보면 국제공동연구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과학기술의 수준은 지난 수 세기간의 발명과 발견을 뛰어넘었고, 연구 주제는 다학제적으로 융합됐으며, 수행 방법은 거대화됐다. 전 세계의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기관이나 단일 국가의 인력만으로는 가속화되는 기술 발달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한 논문은 국내 연구자들이 협력하거나 단독으로 작성한 논문에 비해 세계적인 학술지에서 더 많은 횟수로 피인용된다.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는 더 좋은 성과를 창출하는 발판이자, 창출한 성과를 더욱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기폭제로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글로벌 연구네트워크를 가장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는 핵심 기관이다. 다양한 형태의 학생 교류를 통해 학술적 연구 공동체는 물론이고 각 나라 연구자들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장벽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런 측면에서 대학 구성원은 물론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연구네트워크의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카이스트(KAIST)는 2009년부터 홍콩과기대, 싱가포르 난양공대, 중국 칭화대, 일본 도쿄공대와 연합한 ASPIRE(Asian Science and Technology Pioneering Institutes of Research and Education)를 조직해 운영해왔다. 아시아 지역 연구중심대학 중 톱5에 드는 대학들이 모인 공동체로 과학기술의 혁신을 아시아에서 주도하고 이를 통해 지구촌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이바지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이 공동체가 이달 7일부터 9일까지 KAIST에 모인다. 각 학교를 대표하는 150여명의 학생이 농구ㆍ드래곤보트 경기ㆍ과학퀴즈대회ㆍE-스포츠ㆍ릴레이 레이스 등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스포츠로 경쟁하고 학술과 문화를 아우르는 행사로 교류한다. 아시아를 이끌어갈 미래 연구의 핵심 역량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 속 영웅들도 첫 만남부터 화합했던 것은 아니다. 각자의 개성대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목표를 이해하고 난제를 해결해 나간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지만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연구해 온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인간적인 교감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이 추구하는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의 구축은 날로 거대화되는 국제 공동 연구의 학문적ㆍ정서적 기반이 될 것이다.  KAIST는 개교 이래 아시아에서 신설되는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의 롤모델이 돼 왔다. 이번에 치러질 행사 역시 본교의 제안으로 올해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과학 연구 공동체의 핵심이 되고, 더 나아가 실리콘밸리에 응집돼 있던 첨단 연구의 거점이 이동해오는 신기술의 메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 유의미한 시도와 노력이 많은 국민의 응원과 관심 속에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강성모 카이스트 총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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