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황산테러’ 공소시효 정지 희망 남았다

유가족, 용의자 상대로 검찰 고소장 제출…법원 재정신청 절차 밟으면 시효 정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내 거기 올라가가지고 그 아저씨 봤다. 그래가 뿌렸다. 아는 사람이다.”6살 아이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남은 힘을 다해 엄마에게 얘기했다. 상상하기도 싫은 그날의 기억, ‘황산테러’ 범행의 용의자에 대한 얘기였다. 그 아이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애가 탔다. 하지만 침착하게 아이의 얘기를 들었고, 동영상으로 남겼다. 아이는 그렇게 1999년 5월20일 오전 11시5분 대구 동구 효목동 주택가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연을 전했다. 주인공은 당시 6살이었던 김태완군. 신원 불명의 남성이 김군에게 황산을 끼얹었다. 김군은 전신 40%에 3도 화상을 입었고, 눈은 실명했다. 치료를 받았지만 생명을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결국 49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모는 물론이고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범인을 꼭 잡아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이제 7월7일이면 공소시효가 끝이 난다. 그날이 지나면 대구 ‘황산테러’ 사건에 희생당한 어린 영혼의 이야기는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유족, 용의자 고소(사진:MBC '시사매거진2080' 방송 캡처)

김군의 어머니는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호소를 했다. 대구지검 앞에서 “진실을 밝혀 달라”며 1인시위를 이어갔다. 대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뜻에 동참했다. 간절한 호소는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김군이 말했던 결정적인 단서 “아는 사람이다”라는 얘기는 범인을 잡는 반전의 열쇠가 될까. 현실은 비관적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 249조에 따르면 사형에 이를 수 있는 범죄는 공소시효가 25년이다. 그러나 해당 법조항은 2007년 12월 개정됐다. 김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그 15년이 7월7일 종료되는 것이다. 공소시효를 정지시킬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불과 며칠에 불과한 절박한 상황이지만, 그것이라도 시효를 정지시킬 방법은 있다. 김군 어머니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자 그 길을 선택했다. 김군 어머니는 4일 대구지검에 용의자를 상대로 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용의자는 김군 집 근처에 살던 아저씨인 이모씨였다. 이씨가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사건 당시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지난해 재수사 청원을 받아들여 7개월에 걸친 재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김군이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 순간에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던 그 발언은 남아있다. 특정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배제해서는 곤란한 상황이다.
검찰이 어떤 판단을 할지, 선택이 남아 있다. 검찰이 김군 부모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 김군 부모는 관할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62조의 4(공소시효의 정지)에 따르면 재정신청이 있을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돼 있다. 법적으로 공소시효를 정지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다만, 검찰과 법원이 김군 부모의 뜻을 헤아려 발 빠르게 일처리를 해야 한다는 전제는 남아 있다.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해도 새롭게 15년의 공소시효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남은 며칠의 공소시효를 일단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그런 의미다. 하지만 김군 부모의 심정을 고려할 때 실낱같은 가능성도 희망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법조계 쪽에서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법의 기본인 ‘법적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법원의 한 판사는 “공소시효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공소시효 폐지 문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면서 “이번의 경우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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