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 그가 그립다면…연극 '길 떠나는 가족'

명동예술극장에서 7월13일까지

길 떠나는 가족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956년 9월6일, 이중섭이 세상을 떠났다. 정신병원에 갇힌 채 숨을 거뒀을 때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일생을 사랑한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도 고국 일본으로 돌아간 후였다. 장례비가 없는 데다 무연고자 취급을 받아 그의 시신은 온기가 간 뒤에도 3일이나 방치됐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이렇게 이중섭의 비참한 죽음을 전하면서 시작한다.이 작품은 1991년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당시 서울연극제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등을 휩쓸며 호평을 받았다. 23년 만에 이윤택 연출과 이영란 미술감독이 의기투합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 새 것만을 좇는 문화 세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오래 전 작품을 다시 올리게 된 계기가 됐다. "지금 새 것과 분명 다르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볼만한 연극으로 되살릴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남는 것이 아닐까"라고 이윤택 연출은 말한다.

길 떠나는 가족

작품은 우리에겐 '소'를 그린 화가로 익히 알려진 이중섭의 삶을 무대에 올려놓는다. 사랑하는 연인 마사코를 만난 동경 유학 시절, 북에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했던 피난 시절, 한 평 남짓한 방에 온 가족이 부대끼며 지내야했던 제주도 시절 등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이중섭은 스승으로부터 "피카소와 마티스의 모작 수준의 그림을 그린다"는 혹평을 받아야 했고, 전쟁 후에는 빨갱이로 몰렸으며, 춘화 작가라는 오명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전시회 성공으로 번 돈마저 주변인들이 빼돌려 평생을 가난과 씨름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이 순수하고, 역동적이며, 강렬한 것은 그의 성정이 그러해서다. 이중섭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소와 닭과 새를 즐겨 그리고, '보지 않은 것을 그릴 수 없다'며 신문 삽화 연재를 중단한다. 제주도 시절, 게를 잡아먹고는 게에게 미안한 마음에 게 그림을 그리기도 했을 정도다. 그가 느꼈던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궁핍한 삶, 천진난만한 기행과 결벽증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작품을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이중섭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와 새, 물고기와 아이 등을 배우들이 직접 들고 나와 움직이는 장면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들은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배우들이 나무에다 한지를 붙여 만든 술잔과 주전자, 가방, 지게 등 평면으로 된 소품을 다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행위예술이다. 이영란 미술감독은 "그가 이 땅 위에서 살아낸 아름답고 먹먹한 날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소멸되고, 충돌하는" 과정을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무대로 표현했다. 연극 '단테의 신곡', '에쿠우스' 등의 작품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던 배우 지현준이 이중섭을 연기한다. 실제 이중섭과 비슷한 외모로도 화제가 됐던 지현준은 직접 무대에서 황소를 그려내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이중섭이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때, 무대 한 켠에서 조용히 황소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여운이 오래간다.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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