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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자산배분전략? 당연 필요하지요. 하지만 해외 유수 금융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선 더 시급한 게 있습니다. 바로 철저한 시장조사능력입니다. " 10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제1회 글로벌자산배분포럼' 행사장. 통로까지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강사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초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만난 한 베테랑 증권맨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은 짧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후배들의 '면학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잔소리로 치부하기엔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는 느낌이었다. 저성장·저금리·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이어갈 수 있는 운용 전략을 가다듬기 위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행보는 치열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자산배분 관련 서비스를 총지휘하는 자산배분센터를 출범시켰고, 하나대투증권은 투자전략실을 확대 개편한 자산분석실을 만들어 국내외 경제환경 분석과 자산배분 전략 수립을 전담하면서 글로벌 운용 트렌드에 대응하고 나섰다. 앞서 KDB대우증권은 리서치센터 내에 크로스에셋 전략 파트를 신설해 글로벌 주식시장, 환율, 유가, 주요 원자재 동향을 분석하고 국가별 투자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생산적인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금융투자업계 내부에서도 현재 수준으로는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이 흘러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마다 리서치 인력을 구조조정 1순위로 꼽고 있는 마당에 자산배분이라는 선진 금융기법을 추종할 수 있는 시장조사 능력을 축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가변적인 시장에서 환율, 유가 등을 수시로 체크해서 리스크 헤지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단순히 애널리스트 몇명으로 전담팀을 꾸린 것으로는 턱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의 경우 효율적인 자산배분을 위한 리서치 인력만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매머드 회사와 직접 비교는 불가하더라도 최소한의 시장 조사를 위해서라도 수십명 정도의 전담 인력을 꾸려줘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간부는 "선진국과 주요 신흥국 신용부도스와프(CDS)를 계산해줘야 국가별 환율 등을 감안해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데 이를 위한 기초작업인 컨츄리 리포트조차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금 운용 규모를 논하기 이전에 내실부터 다지려는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매머드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사가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펼 것이 아니라 금융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성실한 투자부터 실행해달라는 얘기다. 정부와 업계 모두 해마다 한국 금융의 선진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자산동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금융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병행하지 않고 있다. 해외 운용사들이 짜놓은 펀드에 곁다리식 투자자로 참여해 과실 일부를 떼어먹는 '천수답식 영업'으로는 한국 금융 선진화를 요원할 뿐이다. 연기금의 리서치 능력도 시급히 끌어올려야 한다. 불과 십여년 뒤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서 "연 4~5% 수준의 수익률을 올리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는 전문가들의 푸념이 이어져서는 안된다.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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