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한국이 미군으로부터의 전시작전권을 이양받는 시기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리 정부에서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걸 이유로 들었지만 수십년간 북한보다 15배 이상의 국방비를 써 온 걸 생각할 때 대체 얼마나 더 준비가 돼야 하는 걸까. 진짜 문제는 준비가 안 된 게 아니라 애초부터 준비할 의지나 각오가 없었던 데 있는 게 아닐까. 세월호의 구조작업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도 바로 그 점에 있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구해내지 못한 그 성과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과연 단 1%의 가능성이더라도 반드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간절함, 필사적인 의지가 있었는지가 의문시됐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정부와 구조 당국의 발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처음에는 그들의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침수' 사고 경과를 전하는 그들의 말투와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 냉철함에 국민들은 안도했고 정부가 믿음직했으며 모두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객관적'인 태도가 정부의 무능과 구조작업의 진상을 압축하는 것인지 모른다. 결국 드러났지만 그것은 냉철함도 아니었고 침착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간절함의 결여, 필사적인 각오의 부재였다. 가족들의 통곡과 절규를 듣지 못하는 공감 능력의 결핍이었다. 장관이 라면을 먹었던 것,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은 그러므로 돌출적인 일탈이 아니라 그 '냉철함'과 '객관성'의 자연스러운 노출이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담아 보내온 기사에 침몰사고를 '사건'으로 표현한 대목이 있었다. 나는 이를 '사고'로 바로 고쳤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건'이라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일 듯했다. 누군가는 선장을 살인자라고 얘기했지만 그렇게 얘기한 이들이 또한 사실상 공범으로 연루된 '형사범죄 사건'이었다. 간절함의 결여, 그리고 '잘 훈련된 무능'으로써 집단 학살의 방조 내지는 집단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보여준 '간접 살인 사건'이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정부를 질타하고 호통을 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본 최고책임자가 자신의 책임에서 탈출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은 세월호 선사와 함께 이들 책임자들의 머릿속에 대해서도 행해져야 할 듯하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꼭 필요해 보인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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