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몸에 맞지않는 프랑스제 옷…뮤지컬 '태양왕'

안재욱, 신성록 주연..태양왕과 세 여인의 사랑 이야기 다뤄

태양왕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뮤지컬 '태양왕'의 주인공 루이 14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인 지식뿐이다. 16세기 말, 신교와 구교가 대립하던 혼란의 프랑스 왕정에서 루이 14세는 어린 나이에 왕에 오르고, 왕이 된 후에는 철저하게 절대왕권을 추구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저 유명한 말은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불렀던 루이 14세의 자신감과 콤플렉스를 동시에 보여주는 말이기도 한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는 와중에도 화려한 궁정생활로 최고의 권력과 권세를 누린 태양왕은 그가 살다간 시대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태양왕의 절대주의적 군주로서의 면모나 복잡한 프랑스혁명 태동기의 시대상도 아닌, 그의 '러브 스토리'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루이14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세 여인과의 이야기가 작품의 큰 줄기가 되는 셈이다. 첫 여인은 루이 14세가 성인이 된 기념 무도회에서 만난 '마리', 두번째는 강력한 왕권을 세운 루이 14세를 방탕한 사치와 향락의 세계로 이끌 몽테스팡 부인, 마지막은 왕실의 가정교사로 있던 프랑소와즈 등이다. 인생의 큰 줄기에서 만난 여인들은 루이 14세가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된다. 문제는 극 전체를 이끌고 가야 할 태양왕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품은 강한 카리스마나 인간적인 면모로 태양왕의 매력을 발산하는 대신, 그저 세 명의 여자를 만나는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러다보니 '마리'의 죽음 이후 태양왕이 느꼈을 고민의 깊이는 가벼워졌고, '몽테스팡' 부인은 노래 한 곡으로 너무나 쉽게 태양왕의 마음을 얻는다. 마침내 찾은 진실한 사랑이었어야 할 '프랑소와즈'와 태양왕의 관계는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성 캐릭터들이 평면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건 둘째치고, 태양왕 자체 캐릭터도 갈피를 못 잡는다. 왕권을 둘러싼 권력의 암투, 민중들의 봉기 등 역사적 배경은 겉핥기에 그쳤다.

태양왕

제작비 총 70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뮤지컬'답게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당시 프랑스 왕궁의 모습을 재현한 듯한 배우들의 의상 및 무대소품에서부터 작품 중간중간 다양한 아크로바틱과 폴댄스까지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크로바틱은 관객들의 순간적인 눈길을 잡아끌 뿐,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동떨어지는 인상을 남긴다. 당대 찬란했던 궁정 문화를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이 무대 위에 펼쳐지긴 하지만, 무대는 심심하고 허전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왕이 되리라' 등 록 사운드가 결합된 뮤지컬 넘버는 귀에 맴돌 정도로 인상적이다. 태양왕을 맡은 배우 안재욱은 안정적이고 신뢰가 가는 연기를 보여주지만, 고음 처리에서는 다소 불안정하고, 힘이 달리는 모습이다. 보포르 공작(김성민, 조휘)과 이자벨(오진영)이 노래하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속이 후련해진다. 유럽뮤지컬 전문 제작사인 EMK뮤지컬 컴퍼니와 마스트엔터테인먼트가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인데, 보고나면 '도대체 이 프랑스 흥행작품이 한국에 와서 무슨 일이 생겼나' 의아해질 뿐이다. 6월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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