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테네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의 학교다."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의 이 말에는 자신이 이끌던 아테네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그가 아테네를 지도했던 30년간은 그리스 민주정의 절정기였고,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얼마 안 돼 아테네는 급속히 쇠퇴한다. 스파르타에게 패한 이후 그리스 민주정과 아테네 문명은 영영 시들어버렸다. 그렇게 급하게 찾아온 황혼기에 소크라테스가 제물로 바쳐졌다. 아테네의 몰락은 페리클레스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일면의 진실이지만 또 한 면의 진실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번영이 오히려 몰락의 씨앗을 남겼다는 것이다. 즉 페리클레스 황금기의 빛과 그늘이었다. "아테네는 겉모습은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지배하는 나라다"라고 당시의 한 역사가가 말했듯 아테네의 민주정 황금기는 실은 비범한 한 사람이 수십 년간 권력을 장악하면서 다스린 '왕정 이상의 민주정'이었다. 그 번영은 한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의 취약성을 안고 있었고, 페리클레스만한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을 때 그 약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국 사회에 페리클레스처럼 뛰어난 지도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1인 중심 사회라는 점에서는 페리클레스 시대와 흡사한 면이 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의 구심점, 최상의 한 점을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는 '소용돌이 사회'다. 어느 조직이든 최고결정권자, 인사권자를 중심으로 정렬한다. 세월호 참사도 상당 부분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가장 나중에 배를 떠났어야 할 사람이 가장 먼저 탈출을 한 선장의 행태는 분노를 넘어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지만 '배에서는 모든 판단은 선장이 한다'고 하는 그 소용돌이 구조가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분명 최종 판단은 선장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모든 판단력을 선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래서 선장의 한마디가 없었기에 다른 승무원들이 기계처럼 행동했다면 그 '무뇌성'이야말로 이번 참사의 또 다른 주범이다. 각자의 역할에서 모두가 선장이었어야 했다.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총체적인 판단으로써 선장의 잘못된 판단(판단을 하기는 했다면)을 막았어야 했다. 한 사람만 올려다보며 죽어라 앞만 보고 가는 행태, 한국이 헤어나지 못한 그 소용돌이가 세월호를, 저 어린 생명들을, 대한민국을 삼켜버렸다.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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