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고요는 욕망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장석주 산문선집 표지.

경기 안성 금광호수변, 장석주 시인이 사는 집의 당호는 '수졸재(守拙齋)다. 이근배 시인이 지어줬다. '수졸'은 "뛰어난 재주를 드러내지 않고 검소하고 투박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는 이곳에서 14년째 '은둔자'로 아주 단순한 삶을 영위한다. 새벽 네시에 읽어나 글 쓰고 해뜨기 직전, 아주 오랜 습관처럼 삽살개와 약수터까지 산책 한다. 그리고 다시 책 읽고 글 쓰고, 가끔은 인근 찻집에 나가 약간의 무료함을 달랜다.

장석주 시인.

안성은 그에게 "고요와 평화를 주고 풍요로운 삶을 가르쳐 줌으로써 한단계 도약하게 해준" 곳이다. 그래서 그는 호수변 마을 사람이 됐다. 촌부 장석주는 농협 조합원이며 마을 대동계 회원이기도 하다. 또 막걸리나 귤 박스를 들고 노인정에 찾아가 노인들의 말벗이 돼주곤 한다. 그렇게 온전치 않으나마 촌부로 살며 얼마 전 함께 기거한 노모를 떠나 보냈다. 그는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막막함을 느낀다"며 "올 봄엔 홀로 농사지을 게 걱정"이라고 탄식했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의 '즐거운 사라'로 필화사건을 겪고 출판사마저 빈털터리로 접었다. 주변 정리를 마치자 전셋집 보증금 정도만 남았다. 잠시 의왕에서 살다가 농협 조합원 자격을 얻어 대출도 받아 건축비를 줄여 가며 이곳에 집을 지었다. 생계도 막막하고, 분노심도 삭혀지지 않았다. 첫 해 주변 텃밭에 노각나무, 소나무 수천 그루를 심었다. 생계를 위한 방편이었다. 헌데 묘목이 풀더미에 갇혀 모두 고사했다. 쌀 사고, 아이들 교육비 마련하고, 세금 내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왜 투철하게 글을 써야 하는 지를 비로소 깨달았다."그는 본성적으로 '문장 노동자'임을 자처한다. 그의 문장 노동은 결코 계급성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정확히 여섯 시간 이상 글을 쓰고, 생계에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는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 방식을 이른다. 그는 40여년간 시, 소설, 평론, 산문, 인문학서 등 전 장르를 넘나들며 70여권을 펴냈다. 그 중 안성에서 무려 40여권을 썼다. 따라서 장석주 문학의 안성시대는 궁핍과 결여에서 노동성을 만들어 낸 시기인 셈이다. "화가가 되기엔 노동의 강도를 감당할 만한 근력이 모자라고, 요리사가 되기엔 혀가 불행의 감미에 무감각하고, 뮤지션이 되기엔 절대 음감을 타고나지 못 했다. 그나마 글 쓰기는 겨우 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앉아 무언가를 끼적였다."그처럼 "몽중생사(夢中生死)의 일, 가느다란 속삭임, 희박한 아름다움에 경도된 마음의 자취"를 산문선집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서랍의 날씨 )에 담아 최근 출간했다. 책 말미에는 '시시하고 하찮은 자술 연보'를 통해 이순에 이른 삶의 자술도 펼쳐놓았다. 자술은 결코 자기 삶에 대한 변호도 없고, 냉랭할 정도로 객관적이다. 꼭 모르는 사람 이력서를 정리한 듯 풀고 있다. "오랫동안 '노자'와 '장자'를 읽었다. 백번이 넘는다. 차츰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제사 글 노동이 충만해졌고, 감성도 일어났다. 노자와 장자는 지금 내게 가장 큰 생계 수단이 됐다. 게다가 노자와 장자를 읽고 쓴 책들이 독자들과 가장 큰 소통 수단이다." 이곳에서 쓴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 '느림과 비움', '그 많은 느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느림과 비움의 미학' 등은 장석주 문학의 변모를 더욱 확연히 엿볼 수 있는 책들이다. 그에게 노자·장자는 "여유와 긍정, 비움, 느림을 배우고 마음을 비우며 욕심을 버리는 법"을 알게 해줬다. 은둔 속에서도 그는 세상과의 소통하는 법을 새롭게 터득했다. 한 때 필화사건 등 시대와의 불화, 폭력으로 생긴 아픔도 치유됐다. 안성 시립도서관 및 조병화문학관인 '필운재'에서 소설 창작 및 시창작 교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변화다. 이곳에서 만난 제자 아닌 제자(?)들에게서 가르치기는 커녕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배웠다. 그 중에는 여럿 등단했다. 이번 산문선집은 장석주 산문 중 가장 유려한 대목과 오랫동안 느끼고 터득한 삶의 통찰을 정리한 책이다. 여전히 문장 노동자로서의 삶을 통해 글 생태계를 이루며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도처에서 사자 새끼들이 사자 소리를 내며 운다. 나는 몽둥이를 들어 사자 소리를 내는 것들을 내리친다. 세상이 고요하다. 이게 고요 이후의 고요다. 나는 그 고요에 닿고자 한다. 고요에 닿을 수 없다면 나는 고요를 깨버릴 것이다. 여기저기서 쫑알거리는 고요들. 몽둥이를 들어 도처에서 고요라고 주장하는 것들의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최근 내 시의 비밀이다."한편 장 시인은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고려원 편집장, 도서출판 '청하' 대표 등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오랫동안', '몽해항로' 등이 있으며 '들뢰즈, 카프카, 김훈', '이상과 모던뽀이들' 등의 평론집이 있다. 또한 수년전부터 각종 언론에 '인문학 산책' 등의 칼럼을 통해 인문학 운동을 선도해 왔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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