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고찰(古刹)에서 묵언과 참선수행으로 7박8일을 정진한 끝에 그는 거사계를 받았다. 수계식에서 주지 스님은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 하지 말라(不妄語), 술 취하지 말라(不醉酒)' 라는 재가오계를(在家五戒)를 내렸다. 마지막 다섯 번째 계는 원래 '술 마시지 말라(不飮酒)'였지만, 세속의 일상에서 술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으므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마시되 취하여 정신을 놓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말라는 뜻으로 바꿨다고 주지 스님은 덧붙였다. 팔뚝에 연비(燃臂)를 하고 지계(持戒)를 맹세하면서도 술을 완전히 멀리할 자신이 없었던 그는 이 자비롭고도 너그러운 '제5계의 현실화'에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번뇌와 책임을 묵시적으로 강요하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도반(道伴)중 한 사람으로부터 술로 인해 연쇄적으로 계율을 어기게 되는 옛 설화를 듣고 난 뒤였다. 옛날 친구 사이인 청년 셋이 절에서 수계식을 마친 뒤 한잔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열흘 가까운 절 생활 끝이라 술이 동한 것은 당연한 이치, 사하촌 어느 주막에서 술에 주린 배를 맘껏 채우며 수계를 자축하였다. 술은 술을 부르는 법, 절에서 집이 가까운 친구 하나가 좋은 술이 있으니 가서 한 잔 더하자고 하니 술기운에 모두 찬동하고 그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감미로운 가양주에 취해 갈 무렵 안주가 바닥이 났는데 때마침 살찐 암탉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서슴없이 그 암탉을 잡아 푸짐한 안주거리로 술을 마셨다, 술 마시지 말라는 계를 어기는 것이 빌미가 되어 도둑질 하지 말라,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를 동시에 어기게 된 것이다. 그때 이웃집 여인이 속옷차림으로 찾아와 닭을 못 봤느냐고 물었다.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를 어겼다. 그 중 한명이 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여인을 보니 요염하기 짝이 없는지라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여인을 범하니 나머지 두 친구들도 차례로 그 여인을 윤간해 버린다. 사음하지 말라는 계까지 어기게 되는 순간이다. 술의 마성과 야성에 잠재된 가공할만한 일탈의 파괴력을 감안하면 이 '불음주의 계'는 나머지 네 가지 계를 담보하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술로 말미암아 판단이 흐려지고 이성이 마비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망언과 음행, 살생과 투도까지 연쇄적으로 파계가 확산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파계의 과정에서도 인과율(因果律)이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냉엄한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여 그는 몸을 떨었다. 산문(山門)을 나서니 기별을 받은 옛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오랜만에 그의 고향땅에서 만났으니 어찌 술이 빠질 수 있으랴.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찾은 주막에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가 다소 자조적인 기분이 되어 "수계하자마자 파계하는군"하며 중얼거리자 친구는 웃으며 "수계는 파계를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묵은 회포를 다 풀어내기에는 술도 시간도 부족한터라 광주 시내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러 가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수계의 감격과 다짐은 지계의 험난함을 예고한 것이었던가! 몇 군데 술집을 전전하는 동안 계율은 블랙아웃에 빠지고 말았고, 다음 날 늦은 아침 그는 친구의 서재에서 격렬한 구토와 두통을 수반하는 모닝 애프터에 시달리며 고장 난 기억과 끊어진 필름을 복원하는 고행에 나섰다. 아! 승(僧)과 속(俗)이 비록 일주문 하나 사이지만 출가의 연을 얻지 못해 세파에 부대끼며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살아야 하는 중생에게 불음주의 계는 멀구나! 어렵구나! 지난 2일 미국의 비즈니스 뉴스전문 온 라인 매체인 쿼츠는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국 성인의 1주일 평균 음주량이 13.7잔(소주 약 2병)으로 조사 대상 44개국 중 1위라고 보도했다. 2위는 러시아로 평균 6.3잔이다. 주류제조회사는 한국거래소 주식업종분류상 음식료업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어 있으나 세속적으로는 무기, 도박, 담배회사와 함께 이른 바 '죄악산업(Sin Business)'에 포함된다.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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