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는 인터넷, 현주소도 인터넷, 성격은 예측불허, 혈액형은 알파(α)형. 살아 있되 형체가 없으며 무색무취의 유령 같지. 불꽃처럼 한순간 타올랐다가 이내 사그라들곤 해. 잠잠하다가도 뜬금없이 포악해지고 또 한없이 감동적이기도 하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변덕쟁이. 나는 누구일까, 궁금하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주 나를 불러내. 아니, 내가 사람들을 줄 세우는 거지. 사람들과 나의 상호작용이랄까. 휘발성이 강하고, 시의성이 있고, 공감대가 폭넓고, 극적인 스토리라면 기본 조건을 갖춘 거야. 이제 소문이 퍼지기만 기다리면 돼. 모니터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슬슬 가열이 되지. 입소문이 나고 마우스 클릭 속도가 빨라지고 검색 키워드를 장악하고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폭발! 드디어 내가 등장하는 거야. 지난해가 전성기였어. 꽃피는 봄이었지. 자고 일어났더니 법무부 차관이란 분의 성접대 의혹이 터졌더라구. 아수라장이 됐지. '고위 공직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탄식이 쏟아졌어. 의혹이 또 다른 의혹을 낳으면서 논란은 영원할 것 같았어. 그런데 이내 다른 내가 나타난 거야. 남양유업 직원의 욕설 파문이었지. 녹음 파일이 공개되고 검찰 압수수색까지 사태가 막장으로 치달았어. 하지만 웬걸, 그새를 참지 못하고 또 다른 내가 끼어들었어. 대통령을 따라 미국 잘 다녀오겠다던 청와대 대변인이 사고를 친 덕분(?)이야. 자연스레 이전의 나들은 뒷전으로 밀렸어. 네티즌들이 남양유업 직원들의 사과를 '윤○○ 대변인, 감사합니다'라고 패러디한 이유를 알겠더라고. 이쯤 되면 내 정체를 짐작할 거야. 누구는 '인터넷 여론'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넷심'이라고 하지. 그래, 인정해. 나도 내가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어. 폭발력은 또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불붙으면 온 나라가 절단날 것 같아. 그러다 쉽게 잊혀. 그동안 내가 숱하게 태어났다 사라진 것도 그래서야. 탄생과 성장, 폭발 그리고 소멸. 이런 습성을 이해하는 것은 민심을 먹고 사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연예인도, 기업인도.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좋아하는 부류는 기자(記者)야. 자기네 기사가 나를 탄생시키길 바라는 거지. 그들은 그것을 '특종'이라고 부르더군.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지. 내가 좀 귀한 몸이거든. 그래도 나를 보고 싶다면 제발 부탁이야. 갈등보다는 화합, 분노보다는 환희, 절망보다는 희망의 나를 불러주길 바래.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지니까. <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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