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발레 국가대표에서 첫 IMF 여성 총재까지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우리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은 낯이 익지만 불편한 존재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을 집행하면서 대대적인 구조개혁까지 요구한 탓이다. 'IMF 외환위기'나 'IMF 세대' 같은 신조어가 나오는 등 IMF는 한국인들에게 고통의 원흉으로 여겨졌다. 최근에도 IMF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부실국들에 자금을 빌려준 뒤 상환하라며 독촉해 유럽인들에게도 원성의 대상이 됐다.이처럼 '악명 높은' IMF의 수장은 가녀린 체구의 여성이다. 그가 바로 'IMF 여신'으로 불리는 전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티 라가르드(56)다. 라가르드 총재는 성추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총재에 이어 2011년부터 IMF를 이끌어 오고 있다. IMF 사상 첫 여성 총재인 그는 스트로스 칸 전 총재로 인해 추락한 IMF의 위상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임기를 절반 채운 지금 라가르드 총재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상황 속에서도 국제 공조를 잘 이끌어 위기극복에 일조했다는 것이다.라가르드 총재는 선출 과정에서부터 우군이 많았다. 당시 세계은행 총재를 미국인이 맡고 있던 만큼 신임 IMF 총재는 유럽 아닌 신흥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라가르드 총재는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IMF 사상 첫 여성 총재의 탄생 앞에 반기를 들 회원국은 없었다.라가르드 총재의 일생은 '유리천장 깨기'로 점철됐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프랑스 태생인 그는 학창시절 '엄친딸'로 통했다. 그는 10대에 수중발레 프랑스 국가대표를 지내고 고교 졸업 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에서 공부했다.라가르드는 미 의회에서 인턴으로 생활하며 국제 경험을 쌓았다. 프랑스 명문 파리 10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세계적인 로펌 '베이커 앤 매킨지'에서 18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이때부터 라가르드의 '최초 여성' 신화가 시작됐다. 그는 매킨지 입사 18년 만에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했다. 2005년에는 프랑스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농업장관을 거쳐 첫 여성 재무장관에 기용됐다.라가르드는 당시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단 있는 성품과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2009년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유럽 최고의 재무장관에 선정했다. 이후 라가르드는 세계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다.라가르드는 지난해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같은 해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 가운데 8위를 장식해 일하는 여성들의 역할모델로 자리 잡았다.라가르드 총재를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은 패션 감각이다. 그는 세계적인 경제회의마다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주목 받곤 한다. 평범한 정장 바지 차림에 화려한 스카프와 금장으로 포인트를 주는가 하면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룩'으로 점잖은 경제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예순이 코앞인 그는 백발을 고수하면서 하늘색, 핑크색, 노랑 등 원색 옷차림도 고급스럽게 소화한다.지연진 기자 gyj@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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