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국의 금융산업은 사면초가의 형국에 처했다. 저수익과 경쟁력 약화, 잦은 비리, 금융소비자들의 불신에 정책 혼선까지 겹쳐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는 박근혜정부의 금융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어제 발표했다. 내용은 다양하지만 금융산업 발전의 큰 그림이라 할 만한 '무엇'은 보이지 않는다. 경쟁력 강화 방안의 열쇳말은 '경쟁'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경쟁의 압력으로 금융산업을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규제를 풀고, 증권사 인수합병(M&A)을 촉진하며, 해외진출 확대로 금융한류를 일으키겠다는 게 경쟁촉진책의 기둥이다. 경쟁과 혁신은 금융산업의 발전에 긴요한 핵심 과제다. 문제는 이번 대책 정도의 소극적 처방으로 과연 금융시장에 경쟁의 불꽃이 튀고, 신수익 기반이 창출될 수 있겠느냐하는 점이다. 발표 내용 중 가장 시선을 끈 은행 '계좌이동제'만 해도 그렇다. 주거래 통장을 다른 은행으로 바꾸면 급여이체 등이 자동 이전되는 계좌이동제는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기보다 고객 편의를 위한 제도개선 차원에 가깝다. '아시아 금융허브'나 '한국의 골드만삭스'식의 허풍은 문제가 있지만, 금융산업을 일으켜 세울 뚜렷한 비전이나 승부수가 없다는 것은 안타깝다. 이자수입에 목매는 은행, 거래수수료에 편향된 증권, 정체성이 없어진 저축은행, 수익기반이 무너진 보험에 이르기까지 금융산업은 저성장ㆍ저금리ㆍ고령화 여파로 깊은 수렁에 빠졌다. 시장은 어렵고 기초체력은 소진돼 웬만한 유인책으로는 경쟁 시스템이 가동되기 힘든 상황이다. 어설픈 경쟁논리는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내기보다 이전투구식의 싸움판을 키울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금융이 경제규모나 제조업의 성장세를 따르지 못하는 열등 산업으로 전락한 데에는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춤추는 정책과 낙하산 인사가 그것이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 논란은 정권 따라 오락가락하는 금융 정책의 난맥상을 드러내는 징표다. 최근의 동양그룹 사태, 국민은행 비리에서 보듯 금융감독 기능은 시장의 안전판 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금융당국은 추락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더 고민해 강도 높고 경쟁력 있는 금융산업 발전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