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 파고다]11-② '주린 그분들 행복없이는, 원각사 존재 이유도 없죠'

1998년 설립…공양 業 쌓아온 주지 보리스님 인터뷰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 공원 북문에 위치한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들이 배식을 받고 있다. 이곳의 점심메뉴는 매일 비빔밥이다. 그래도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잘 먹었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원각사 무료급식소 입구 간판에는 크진 않지만 정갈한 글씨체로 이같이 적혀 있다. 문구의 의미가 궁금해져 원각사 주지스님인 보리스님(67)에게 물었다. 그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이 없으면 원각사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답했다.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근 20년간 '업'으로 삼아왔으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스님은 1994년부터 파고다공원 안에서 노인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며 무료 배식을 시작했다. 이후 불자들이 한두 명씩 무료 배식에 동참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국수를 삶아 주기도 했다. IMF 경제위기로 수많은 퇴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졌던 1997년에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위탁을 받아 소고기국과 쌀밥을 하루 최대 1200여명에게 대접하기도 했단다. 이듬해 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음식물 반입이 전면 금지되자 근처 건물 2층을 월세로 임차해 지금의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세웠다.무료급식은 정부의 지원을 받진 않지만, 오랜 기간 인연을 함께 한 30여개 불교ㆍ시민단체와 기업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덕분에 인건비는 전혀 들지 않는다. 스님은 "간혹 건강상의 문제로 봉사를 계속하지 못하는 분들도 생기지만 기존 봉사자들의 권유로 새 식구가 들어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한 신도가 나주 쌀 100가마를 선뜻 내놔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정원 32명인 작은 법당 안에서 1시간 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100명 이상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덕분이다. 스님은 "사람이 많다 싶으면 어르신들 스스로 어느 때보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켜준다"고 말했다. 원각사는 몸과 마음이 피로한 어르신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철에는 밖에 있다가 따뜻한 법당 안으로 들어와 몸이 노곤해진 분들이 벽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기도 한다.최근에는 경제 사정도 나아지고 무료급식소도 여러 곳 생기면서 원각사에서 점심을 먹는 이가 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스님은 "또 다시 경제가 어려워져 제2, 제3의 IMF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건강이 받쳐준다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면서 "한 끼 배고픔을 달래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고 되물었다. 요즘 보리스님은 서울에서 경기도 포천까지 수시로 왕래한다. 무료급식에 쓸 배추와 무를 재배하는 일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곧 가을걷이를 할 계획인데 다가오는 겨울 어르신들에게 이 재료로 만든 친환경 김치를 내놓을 생각에 스님은 벌써부터 들떠 있다.[관련기사]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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