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11)

수도 고치러온 사내, 최기룡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영감이 또라이라고 하지만 벌건 대낮에 대놓고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기회에 확실하게 영감의 기를 꺾어놓아야 다음 일이 순조롭게 되어갈 수 있으리란 판단도 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험한 순간이기도 했지만 현장소장인 그에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이기도 했다.이층집 영감 바로 앞 한 걸음도 채 되지 않는 지점에 이른 최기룡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는 영감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곧 그의 입가가 비틀어지며 냉소 같은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재빨리 영감의 손에서 엽총을 나꿔채었다. 아니 나꿔채려는 순간이었다. 이장 운학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그만 둬! 야, 최기룡이....! 이 새끼!” 어디서 나타났는지 술이 잔뜩 취한 얼굴로 사내를 향해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뛰어든 사내, 운학 이장이었다. 영감에게서 마악 엽총을 나꿔채려 손을 내밀었던 사내는 그 소리에 순간 도둑질하다 들킨 놈 모양 움칠하면서 동작을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장에게로 향했다.“흥, 언제부텀 니가 쟤들이랑 한 통속이었나?”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이층집 영감과 사내를 향해 걸어가며 운학이 소리쳤다. “설마하니 네 놈이 저기 쓰레기 같은 송사장 똥구녕 핥아주는 사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암, 귀신도 몰랐을거야! 수도 고치는 놈이 수도나 고치면 될 일이지 차차차 파라다이스 상무....?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구!”“말조심 해.” 이장의 비웃음이 섞인 속사포 같은 공격에 사내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면서 낮게 씹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장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말조심....? 그래, 흥, 말조심할게. 넌 개자슥이다. 어쩔래? 넌 지금까지 친구인 나까지 속였어!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속으론 은밀하게, 그래 은밀하게 저 송사장이란 눔들하고 거래를 했어. 동네를 저 눔들한테 팔아먹은 거야. 아니야?”“너, 정말 말조심 안 할거야?” 순간 하림만 느꼈던 것일까, 힐끗 돌아보는 사내의 눈에 번쩍 살기 같은 게 띄었다. 하림은 그날 밤의 광경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태연히 개를 쏘아죽이고 끌고 가던 그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운학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말로는 한쪽 다리를 조국에 바쳤다고 하는 상이용사였다. 그깐 협박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안 하면....? 안 하면 어쩔테냐? 개발, 개발 해쌓지만 그까짓 유원지 들어오면 동네 망해. 동네는 망한다구! 늬 놈들이야 한탕 치고 달아나면 그 뿐이지만 동네는 망한다구. 골프장 들어온다고 떠들썩하던 동네들 지금 다 어디로 갔나?” 그래 놓고 경로잔치에 모인 영감네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말했다.“여러분, 나 이장입니다. 이장 운학이라구요! 제발 찬물 마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아, 수백년 조상들이 지켜온 동네가 하루아침에 놀이터로 변해서야 말이나 되겠습니까? 땅값 오른다고 지랄 떨지만 쟤들 알고 보면 사기꾼들이예요! 알거지 사기꾼들이라니까요! 속으면 안 돼요!”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김영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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