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우리사회에서 가장 상반된 처지에 놓여 있는 직업을 꼽는다면 아마도 국회의원이 아닐까 싶다. 다른 어느 직업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얻을 수 있는 이 직업은 그 높은 지위, 많은 권한을 생각하면 적잖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일일 테지만 실제로는 조롱과 냉소를 받는 집단이 돼 있다. 이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한 실망은 비난을 넘어 비아냥과 희화화의 수준이라고 해야 할 정도니 이렇게 극단적 상반성을 보여주는 직업을 또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지난주에 사실상 끝난 올해의 국정감사는 이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국회의 가장 큰 연중행사 중 하나랄 수 있는 국감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실', '무능'의 냉소를 받았다. 국회(의원) 무용론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풍경이 비단 국감 때뿐이겠는가. 국회에 대한 거친 비판은 너무도 흔히 듣는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많은 이들에게 국회는 세금만 축내는 집단으로, 없어져야 할 한량들로 낙인 찍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냉소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국회에 대한 이 같은 경멸은 우리사회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점에서 매우 우려스런 일이다. 국회가 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생각할 때 국회에 대한 환멸과 냉소, 국회 축소ㆍ무용론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정치적 분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자해 행위'인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국회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처우와 특권의 부여는 줄이는 게 필요할 수 있으나 국회 자체의 권능은 강화돼 행정부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행정부의 기능과 권한이 날로 비대해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국회의 견제는 그만큼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삼권분립의 진정한 본질 중 하나는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우위라고 말한다. 실제로 민주주의 제도의 역사는 막강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강화의 필요성을 보여준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아니 정반대다. 행정부 대 국회는 골리앗 대 다윗의 싸움처럼 극심한 불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관료들에 의한 압도적인 숫적 우위와 전문성으로 행정부는 국회로부터 견제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회를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견제와 균형의 저울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를 마치 정치개혁의 길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단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치'를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어느 '신진 거물 정치인'이 국회의원 수 축소를 주장했을 때 그는 정치에 대한 인식의 빈곤과 무지를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국회의 실질적 강화, 이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 많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그와 함께 이뤄야 할 것,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어떤 이들을 국회로 보낼 것인가라는 것이다. 국회는 의원 한 명 한 명이 곧 하나의 헌법기관이다. 결국 부실 국회는 '부실 의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국민들은 부실 국회에 대해 비난하고 불평을 제기할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른다. 상당수 지역에서 성추행이나 파렴치를 저지른 이조차 한없이 관대한 마음으로 뽑아주는 현실에서 '부실 국감', '부실 국회'라고 비난하는 것은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지금의 부실은 선거 때에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의원을 욕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것임을 적잖은 이들은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무결점의 완벽한 인격자를 뽑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작은 차이에 주목해야 큰 차이가 만들어진다." 고(故) 김근태 의원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국민들이 작은 차이를 분별해 내는 것이야말로 '부실 국감'을 막는 첫걸음이다.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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