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私債시장과 기업어음(CP)시장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부도사태에 대해 풀어야 할 의문점이 적지 않다. 동양그룹은 적자가 커서 이미 10여년 전부터 은행관리에 들어가 있었다. 2010년에는 이자보상배율,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는 비율이 0.04%에 불과했고, 부채비율이 2000%를 넘어 업계에 '사실상 부도'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미스터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미 부도 상태나 다름없는 동양그룹이 발행한 CP가 오히려 더 많이 발행되고 팔린 것이다. 2010년 이후 최근까지 동양이 발행한 CP를 매입한 사람들은 모조리 '개미 투자자'들이었다. 금융기관과 전문 투자자들이 다 빠져나간 시장에 개인들이 뛰어들었다가 시한폭탄이 터진 것이다. 기업어음이 무엇인가? 발행하는 데 거의 아무런 규제가 없다. 발행 최저등급 규제도 없고, 이른바 '문방구 어음' 양식에 따라 오전에 발행해 그날 오후에라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한 자금조달 수단이긴 해도 신용이 없으면 아무도 사주지 않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일종의 '현대판 사채(私債)시장'인 셈이다.  업계는 모두 알고 있었던 '휴지조각 동양 CP'를 개인 투자자들이 무더기로 사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높은 금리의 유혹이 컸을 것이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3~4%인데 3개월 만기 CP를 눈 딱 감고 네 차례 정도 돌리면 연 9~10% 의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72년 한국 경제의 지축을 뒤흔든 '8.3 사채동결 조치' 당시 은행과 사채시장 금리 격차가 딱 2배 정도였다. 은행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바라고 기업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였다는 점에서는 외형상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당시 사채시장에서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줬던 사람들은 "원금까지 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반면 동양그룹 CP를 산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금융기관을 통해 정상적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양증권이 CP를 팔면서 "절대 부도날 리가 없다"는 점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강조했을 가능성이다. 이 같은 판매방식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단순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 '사기 행위'에 해당된다. 사실상 부도 상태인데도 "부도가 안 난다"면서 판매했다면 명백한 사기인 것이다. 사기성 판매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동양증권과 대주주에게 철저한 민ㆍ형사상 책임을 묻고 이들이 마지막 한 푼까지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상해 주도록 조치해야 한다.  둘째, 금융당국은 오래전부터 동양그룹 발행 CP의 문제점과 파국에 따른 위험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 같은 결과를 막지 못했을까? 금융당국의 설명대로 "아직 부도가 나지 않은 기업에 대해 CP 발행을 금지할 만한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근원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CP 발행의 본질을 '사채시장'처럼 만들어 놓고도 계열사 금융기관을 통해 아무 위험 구분 없이 판매하도록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주식만 하더라도 코스피와 코스닥시장, 벤처시장, 제3시장 등을 구분해 투자자들로 하여금 수익률과 위험도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차제에 CP나 유사한 특징을 가진 금융상품 역시 위험등급별로 시장을 따로 만들어 투자자들이 '위험시장'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근원적으로 금융시장의 문제점을 들여다 보고 보완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동양그룹 CP사태가 되풀이될 것이다.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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