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blockquote">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8년간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지난 2009년 1만5412명, 2010년 1만5566명, 2011년 1만590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도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2009년부터 올 7월말까지 849명. 이틀에 한 명 꼴로 투신한 셈이다. 특히 야외활동이 증가하는 6~8월 여름철에 한강 투신건수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아시아경제는 한강 투신사고의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한강구조대의 숨가쁜 구조활동을 현장 취재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최근 한강 투신자수(출처 : 서울시)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섬뜩한 얼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몸집이 큰 50대 여성, 앳된 여고생, 얼마 전 전역했다는 짧은 머리 20대 남성 등. 김범인 영등포수난구조대 팀장(56)은 이들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때론 문득문득 떠오른 얼굴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등장해 그를 괴롭힌다. 특히 눈앞에서 가라앉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했을 땐 더 생생하다.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신고를 받고 마포대교에 보트를 타고 출동하니 사람이 가라앉고 있었어요.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결국 못 구했죠. 그때의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특전사 부사관 출신인 김 팀장은 지난 1991년 소방관이 돼 1997년부터 수난구조대 근무를 시작했다. 16년 경력이 쌓이는 동안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들도 하나둘씩 늘어갔다.수난구조대 1년 경력의 유재환 대원도 마찬가지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50대 남성을 시작으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마주치는 망자의 얼굴들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맡을 때면 시체 냄새를 맡는 것 같아 괴롭다.유 대원은 "물속에서 마주친 시체의 모습들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며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해도 얼굴은 또렷하다"고 말했다.
▲영등포수난구조대 소속 유재환 대원이 지난 5일 오후 수상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영등포수난구조대는 반포대교 하류부터 강서구 개화동까지 총 22.1km의 구간을 책임진다. 여기에는 투신자살 사고가 빈번한 마포대교와 서강대교가 포함돼 있다. 지난달 영등포수난구조대의 투신자 구조 출동은 35회. 이중 30명을 구조했지만 5명은 끝내 구하지 못했다. 대원들은 일주일에 한번 이상 죽음과 맞닥뜨린 셈이다. 이옥철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반복적으로 특정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볼 수 있다"며 "참혹한 상황을 목격한 경우 이 경험을 대원들과 함께 나누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조에 실패하거나 시체를 수습한 날에는 식사를 하기도 어렵다. 14년째 영등포 수난구조대의 식사를 준비해주는 김모(60)씨는 "워낙 강한 사람들이라 평소에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죽은 사람을 보고 온 날은 대원들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전했다.서울소방재난본부도 구조대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심신 안정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지역 23개 소방서 중 은평·중부·광진·마포소방서 등 4곳에 설치돼 있다. 올해 말까지 소방재난본부와 강서·도봉소방서로 확대할 예정이다.이 교수는 "소방재난본부에서도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데 이제는 심리치료에 대한 제도적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심리적 조치와 더불어 근무조건 등 직원 복지향상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주상돈 기자 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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