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급에서 부장급으로 대거 이동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보험상품을 최종 검증하는 선임계리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선임계리사는 '보험사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했지만 지금은 기피하는 것은 물론, 직급도 임원급에서 부장급으로 낮아졌다. 요즘에는 차장급이 맡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직급과 관계없이 계리업무 10년 이상의 경력만 있으면 된다'는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선임계리사가 임원급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금감원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3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생명은 최근 부장급 선임계리사 찾기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 선임계리사를 맡고 있던 부장급 간부가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해당 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상무로 승진한 이후 선임계리사뿐 아니라 계리부가 소속돼 있는 경영기획관리본부 전체를 총괄하게 됐다"면서 "업무가 과중된데다 계리업무를 함께 한다는 점이 걸려 새로운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선임계리사를 임원이 맡지 않는 사례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 '보험상품개발자가 검증업무까지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선임계리사의 겸직금지를 권고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생명보험 빅3 가운데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지난해 선임계리사를 임원급에서 부장급으로 교체했다. 현재는 교보생명만이 유일하게 임원을 두고 있다. 다만 교보생명의 경우 선임계리사가 상품, 계리와 무관한 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손보업계에서는 현대해상이 올 4월 차장급을 선임계리사로 임명해 업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생보사 관계자는 "다른 업무를 같이 맡기지 않는 이상 선임계리사만 전담하는 임원을 두기가 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단순 검증업무는 계리경력만 있으면 가능한데, 많은 연봉을 주면서까지 임원에게 맡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선임계리사가 기피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커졌기 때문이다. 선임계리사는 개발된 상품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다. 검증이 잘못돼 상품 판매 후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품 개발과 관련한 의사결정과정에 선임계리사가 참여할 여지는 없다. 한 생보사 선임계리사는 "상품 개발업무를 맡으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검증은 별볼일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금감원은 어정쩡한 모습이다. 임원급이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보험사들의 반대 움직임에 이렇다할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딱히 해결방안을 찾기가 힘들어 일단 선임계리사 모임에 요구사항을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면서 "답변을 받은 후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선임계리사들은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검증을 포함한 보험사 계리업무 전체를 업무영역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사 선임계리사는 "과거와 같이 상품개발 업무를 같이 하도록 금감원이 풀어줘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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