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힘들고 짜증 나는 여름이었다. 협박에 가까운 정부의 절전 요구 때문이었다. 허울 좋은 녹색성장이 남겨 준 고층 유리 건물의 뜨거운 열기 속에 갇혀 버린 소비자의 입장은 정말 난처했다. 소비자의 협조도 있었지만 최악의 사태를 면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부가 산업체와 공공기관의 전기를 끊어 버린 덕분에 무려 원전 5기에 해당하는 전력 소비를 줄였다고 한다. 세금과 마찬가지인 전력기반기금을 펑펑 쓰고, 생산 차질로 발생한 부담을 산업체에 떠넘겨서 얻어 낸 짜증 나는 결과일 뿐이다. 위기가 끝난 것도 아니다. 더 끔찍한 위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 넉 달 후면 시작되는 겨울철 전력 위기가 그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3일 우리의 전력 수요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맹추위 속의 강제 절전은 차원이 다르다. 사람, 농작물, 가축의 목숨이 달린 일이 된다. 짜증 나는 것은 폭염이 아니라 모든 잘못을 남에게 떠넘겨 버린 에너지 당국이다. 전력 위기는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 탓이고 원전 비리는 원자력 마피아 탓이라고 한다. 자신들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식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전력 사정을 미국을 흉내 낸 전력산업현대화로 망쳐 버리고, 유류세를 크게 올려 전기 소비를 부추겼던 자신들의 정책적 실패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변명조차 없다. 전력산업이 비리의 도가니로 전락하도록 눈감고 있었던 관리 실패에 대한 자책의 모습도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력 비리와 정말 무관하다고 믿을 수도 없다. 그저 산업부의 약은 처세가 얄미울 뿐이다. 지난 2년 동안 잠잠하던 산업부가 느닷없이 내놓은 대책도 짜증스럽다. 이미 한물 가버린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을 들먹이는 모습부터 그렇다.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이나 스마트그리드는 먼 훗날에나 가능한 꿈이다. 심야와 피크 시간의 요금 차이를 확대해서 공공기관과 대형건물에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를 유도하겠다는 정책은 전기요금을 올려 보겠다는 얄팍한 꼼수다. 야간의 전력수요가 넘쳐서 심야전기 제도를 폐기했던 일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정말 짜증 나는 것은 전기요금 현실화만 외쳐 대는 일부 몰지각한 전문가와 언론이다. 지난 2년 동안 5차례나 전기요금을 올리고 누진제를 손봤지만 전력 소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전기 소비를 포기할 대안이 없는 소비자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기요금이 원가 이하라서 문제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생산 원가는 소비자의 전기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전기의 생산 원가는 하느님도 알 수 없는 공허한 숫자 놀음이다. 전력산업계의 비리만 걷어 내도 원가는 큰 폭으로 줄어든다. 가정용과 산업용의 요금 차이를 들먹이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악수다. 선진국과의 전기요금 비교는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엉터리 논리다. 국민의 짜증을 달래 주고 전력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정부가 전기 소비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서 우선 당장의 전기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경유로 전기 난방을 대체하고 천연가스로 전기 냉방을 하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 비현실적인 대안만 쏟아 내는 엉터리 전력 전문가는 경계해야 한다. 대표적인 혐오 시설인 발전소를 대도시 근처에 짓겠다는 분산형 공급은 삼척동자도 웃을 황당한 주장이다. 에너지 소비의 절약과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진짜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무능과 무책임이 도를 넘어선 에너지 당국을 뿌리부터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이덕환 탄소문화원 원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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