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마가 끝나자 살인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최근 울산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40도를 넘어 기상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연일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이런 요즘 아침마다 귀에 따갑게 들리는 뉴스가 있다. 전력수급 경보의 예보다. 일상사에 앞서 무더위와 싸울 생각에 머리는 더 무거워진다. 에너지 대부분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현실에 비추어 에너지를 아끼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오늘의 전력난과 같은 에너지 위기는 수급계획을 잘못한 에너지 공기업과 이들을 감독하는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하지만 비난과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율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와 공급은 전국 단위의 대규모 체계로 이뤄져 있다. 과거 중앙정부 주도의 산업화, 도시화 시대에 이 같은 시스템은 효율적이었다. 요구되는 대량소비를 지원하기에 대량공급체계는 적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고 다양한 에너지 수급환경을 중앙정부와 전국 규모의 공기업이 맡아서 하기에 이들의 짐은 이제 너무 무겁다. 하나의 고비를 넘긴다 해도 또다시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교통이나 문화적 환경이 다르듯 에너지 환경도 지역마다 다르다. 인구밀도는 낮으면서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대도시와 같이 에너지 자급률이 제로에 가까운 지역도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는 전국 어디서나 같은 수준의 비용을 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것이 주는 폐해가 적지 않다.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은 에너지자원이 풍부하면서도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도시에서는 절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 수급체계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시장은 기존의 그것과 개념이 다르다. 지금의 중앙 공기업과 지역이, 지역과 지역이 거래하는 형태이다. 에너지 환경이 열악한 지역은 보다 비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사 올 수밖에 없다. 에너지 소비에 따른 비용도 증가한다. 이런 지역은 차츰 외면을 받게 될 것이므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은 물론 한 번 쓴 에너지도 다시 쓰고, 초대형 건물과 같이 수급균형을 심하게 깨뜨리는 사업장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해당 지역 지방정부가 할 수 있다. 지방정부에는 이미 관할 지역 내 건물과 시설 등에 대한 인허가권이 주어져 있다. 시설의 인허가 시 교통이나 환경 영향은 평가해도 에너지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 시설의 존재가 지역 에너지 수급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지금도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 대해 중앙정부가 형식적인 검토는 한다). 지역의 에너지 수요과 공급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지방정부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인근 도시보다 에너지 요금이 비싼 지역의 단체장은 여간해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일찌감치 재선 욕심은 포기하란 얘기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수급체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고 지방정부와 보조를 맞출 지역 에너지 회사와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에너지 수급에 관한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돼야 하고 새로운 에너지 요금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의 에너지 소비는 크게 줄고 궁극적으로 에너지 요금도 평준화될 것이며 결실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관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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