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 - 8장 추억과 상처 사이(155)

“그날 밤 늦도록 한씨 아저씨는 혼자 어머니를 부르며 나짱의 바닷가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엄마, 라고 불렀어요. 엄마, 엄마, 하고 말이예요. 어린 아이처럼 말이죠. 하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왜요....?”남경희가 물었다. 뚝길이 끝나고 그녀의 이층집에 거의 다 와가고 있었다.“다들 그게 그 사람식의 치유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죠.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고, 누구도 섣불리 개입할 수 없는 상처 말이예요. 그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전쟁 중이었고, 같이 탈출했다가 정글 속에서 실종된 우일병이 틀림없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어요.”하림이 말했다. 여전히 바람은 거칠게 불고 있었다.“월남의 달이란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날 밤은 정말 달이 밝았어요. 파도소리도 지치지 않고 몰려왔구요. 술을 마셔도 도무지 취하지 않았어요. 한씨 아저씨는 혼자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구요. 정말이지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어요.”그날 나짱의 바닷가에 떠있던 둥근 달이 지금은 초승달이 되어 드높은 하늘에 칼날처럼 박혀있었다. 도무지 같은 달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한씨 아저씨란 분.... 정말 안 됐군요.”“그때 난 처음 알았어요. 늙은 사람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요. 늙은 사람의 마음 속에도 어린애가 하나씩 들어있다는 사실도요.”“그렇군요.” “난 아까 남선생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베트남 어딘가에 서있는 <한국군 증오비>를 보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다는 이야기.... 영광스럽기는 커녕 너무나 놀랍고 당황스러웠을 비. 자신의 자존심과 가치를 여지없이 무너뜨렸을 그 비 말이예요. 우리에게도 전쟁 때 그렇게 학살당했던 기억들이 남아있죠. 노근리, 거창, 여수, 광주, 제주도....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시퍼런 상처로 남아 해마다 때가 되면 다시 도지기 시작하죠.”하림은 천천히 걸음을 늦추고 남경희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둠 속에서 초승달이 하얀 스카프로 감싼 그녀의 얼굴을 요기롭게 비쳤다. “어쨌거나 고마웠어요. 오늘 하루.... 아침부터 지금까지. 덕분에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했거든요.”그녀가 말했다. 하림은 얼른 외면을 하며 말했다.“그렇담 다행이군요.”“언제 돌아가실 건가요?”“곧......”하림은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자기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자기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화실에 놀러가도 되죠?”하림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바람이 휑하고 불어와 하얀 스카프 끝이 날렸다. 하림은 이쯤에서 그녀와 헤어져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리만 건너면 되었다.“고마워요.”그녀가 말했다. 하림은 멈추어 서서 그녀가 집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돌아서서 왔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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