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의 언어 파괴인가, 언어 창조인가. 연일 신조어를 남발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들 녀석 얘기다. 지난 주말 놀아 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찾은 동네 운동장에서다. "달리기 시합할까?"는 물음에 네, 아니오가 아닌 '콜'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저 말을 어디서 배웠지, 물어볼 찰나 녀석이 잽싸게 뛰어갔다. '역시 천방지축'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간격이 제법 멀어졌다. 급한 마음에 녀석을 뒤쫓으며 외쳤다. "나도 콜~." '콜(call)'은 먼저 베팅(돈을 건)한 사람과 같은 금액을 베팅한다는 뜻의 포커 용어다. 이길 자신이 없어서 카드를 접는 '폴드(foldㆍ흔히 다이(die)로 알려졌다)'와 달리 게임을 이어 가겠다는 뜻이다. 콜이 '초딩(초등학교)' 용어가 된 배경도 놀이든 게임이든 친구의 제안을 받겠다는 의사표현으로 짐작된다. '좋아' 또는 '오케이'의 동의어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은 뭔가를 얻기 위해 또 다른 뭔가를 걸어야 하는 게임의 연속이다. 입학과 취업, 결혼과 육아는 물론 기업 인수합병(M&A), 주식 투자는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선택의 시험대다. 신화 속 제우스, 포세이돈, 하디스도 세상을 하늘과 바다, 지옥으로 나눌 때 주사위로 결정했다고 하지 않던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업계가 '콜'을 외쳐야 하는 게임의 무대에 올랐다. 이통 3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롱텀에볼루션(LTE) 주파수가 경매에 나오면서 '쩐쟁(돈 전쟁)'이 불붙었다. 주파수는 고속도로와 같아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몫 좋은 주파수 대역(도로)을 거머쥐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시한 경매 방식은 '복수밴드 혼합경매'로 이름만큼이나 난해하고 복잡하다. 입찰에 참여하는 이통 3사는 최대 50번까지 베팅할 수 있으며, 그래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51번째 밀봉방식으로 단판 승부를 낸다. 눈치 작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 손에 쥔 패만 보고 있으면 백전백패다. 도박사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명언은 '승부의 세계는 내 패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판을 읽는 것'이다. 포커를 즐기는 워런 버핏도 "게임을 시작한 지 30분 내 테이블에서 봉(먹이)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바로 당신이 봉"이라고 일갈했다. 내 패는 물론 상대 패까지 고려해 판세를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통 3사 중 누가 봉이 될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결판이 난다. 판세를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포커페이스'다. 내 패가 좋아도 나쁜 척, 나빠도 좋은 척 상대를 속여야 한다. 전략이 노출되면 그 역시 백전백패다. 기업 간 M&A도 결국 포커페이스의 손에 결정된다. 이미 두 차례 M&A에 실패했던 하이닉스를 SK가 품어 안은 것은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서다. 2011년 매물로 나온 현대건설의 새 주인이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패는 까봐야 안다'는 속설을 증명한다. '도박사의 오류'도 경계해야 한다. 동전을 처음 던졌을 때 뒷면이 나오면 다음엔 앞면에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논리적 오류다. 동전을 두 번째 던졌을 때도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독립적인 확률 사건인데도 연속적으로 오인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떨어진 주식은 확률적으로 내일 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떨어지면 내일도 떨어질 수 있는 게 주식이다. 주가가 왜 오르는지, 무엇 때문에 떨어지는지 그 원인을 찾는 게 급선무다.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판세를 읽는 것은 베팅의 철칙이다. 여기에 운까지 따르면 승률은 한층 높아진다. 그래도 게임에서 진다면? 결과에 승복하는 수밖에. 도박사들이 바이블처럼 받드는 최고의 명언은 이렇다. '훌륭한 플레이어는 돈을 따고 일어설 줄 안다. 더 훌륭한 플레이어는 돈을 잃고서도 일어설 줄 안다.' 승패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게임판, 나아가 우리 삶의 최고 가치다.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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