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형마트 쉬는날 전통시장 가니 '의무휴업 소용없다' 왜?

시장 내 점포 중 3분의 1이 문닫아..주변 중소형마트는 의무휴업 없어 자정까지 영업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물건을 팔지 못하면 다 상해서 내버려야 하니까 일요일에도 장사하러 나온 거지. 심지어 하루에 만원 벌어 가는 날도 있다니까." 23일 서울 논현동의 영동전통시장.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들이 영업을 하지 않는 넷째 일요일이지만 전통시장의 활기를 느끼긴 힘들었다. 생선을 파는 박모(68)할머니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평일이나 주말이나 손님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소일거리로 할일이 없으니까 장사를 한다고 쳐도 시장일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장을 보는 손님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상인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더구나 주말이라 시장안의 점포 3분의 1 이상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휴일로 정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무색해 보였다. 삼계탕용 닭을 사기 위해 시장을 한참동안 헤매던 두 중년여성은 문을 닫은 점포를 보고 이내 돌아서고 만다. 시장 주변에 있는 킴스클럽,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은 이날 모두 휴업을 했지만, 손님들이 시장으로 모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년동안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락(62)씨는 "6~7년전에 비하면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의무휴업 대상이 아닌 중소마트가 시장 근처에만 3곳이 있어 그곳으로 손님들이 몰리는 것 같다"면서 "제품의 질은 어떨지 모르지만 도매시장보다 싸게 파는 마트를 당해내긴 힘들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말처럼 시장 진입구에 자리잡은 할인마트의 분위기는 전통시장과는 딴판이었다. 매장 앞에 들어서자 큼지막하게 적힌 할인 가격표와 함께 귀를 울리는 노랫소리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손님들을 맞았다. 계산대 앞에는 줄을 늘어선 손님들이 여럿이었다. 주로 20~30대 젊은 여성층이나 식재료·과일 등을 사기 위해 나온 남성들이었다. 이들 중소형마트는 법적으로 의무휴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오전 9시께부터 자정까지 영업한다. 전통시장이 타격을 받자 시장 입구에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의 상황도 나빠졌다.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팔며 노점상을 운영하는 이모(66)씨는 "아침 8시부터 나왔지만 아직 개시도 못했다"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없으니 먹거리 장사도 안 되기는 매 한가지"라고 했다. 이들이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단, 재료가 썩거나 상해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통시장 인근에 거주하는 최정림(40)씨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가끔씩 시장에 들러 장을 보는 편"이라며 "적은 양을 사도 '덤'을 주는 상인들의 인심이 좋고 정감있어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질 좋은 상품을 깔끔하게 진열해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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