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100억 있으면 행복하겠니...'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돈 보면 죽었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미친 자본주의'에게 묻는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당신의 답변은 무엇인가. 많은 숫자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1억? 50억? 100억? 개인마다 내놓는 답은 다르겠지만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마다할 이는 아마 없을 듯하다. 이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의 저자도 책을 집필하는 동안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그럴 때마다 되묻는다. "당신 생각으로는 얼마면 충분할 것 같은가?" 여기서 '충분하다'의 구체적인 뜻은 '좋은 삶(good life)을 살기에 충분할 정도'를 말한다.그렇다면 다시 개념 정의가 필요하겠다. '좋은 삶'이란 또 어떤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적어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내 삶의 목표가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점점 더 뚱뚱해지려고 먹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심한 경쟁의 쳇바퀴로 내몰려야 하는 우리 시대가 당면한 모순을 파헤친다. '행복'이 아닌 '돈'이 삶의 목표가 된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도 없는 '자포자기' 세대들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저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30년에 걸쳐 케인스 전기 3부작을 써내려간 저력을 살려 이 책에서도 케인스 이론을 꺼내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사회. 노동의 산물이 사회 전체에 균등하게 분배된 이곳에서는 적게 일하고도 임금은 이전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여가시간은 늘어난다. 케인스가 내다본 100년 후 자본주의의 미래상이다. 이 100년 후라는 게 2030년이니, 우리로서는 불과 17년 뒤의 일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아닌 하루 15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꿈같은 일이다.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여가'에 대해 잠재적으로 두려워하거나, 혹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됐거나.케인스 이론이 빗나간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풍요함은 달성했을지언정 자본주의가 심어놓은 습관 탓에 그 풍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초상들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헤아릴 수도 없는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부가 주는 진정한 편익을 앗아가 버렸다. '이제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바로 그것이다"는 진단은 섬뜩하고, 무시무시하다. 과연 우리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아무리 배를 채워도 허기가 멎지 않는 괴물이 돼 버린 것일까?다행히도 저자는 인류의 오랜 지혜 창고를 헤집어내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한다. 돈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는 풍토가 역사 전체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유럽과 인도, 중국과 같은 오래된 문명에서는 상업은 정치와 명상 아래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그것이 다른 활동을 종속시키는 것을 꾸준히 경계하고 우려했다. 최근에는 '행복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행복과 부가 비례관계가 결코 될 수 없음을 입증하면서 이 같은 계보를 잇고 있다. 저자는 좋은 삶을 차지하는 요건 중에서 '돈' 대신 들어갈 요소로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등 7가지 기본재를 꼽는다. 영국의 사례는 반면교사 삼을 만하다. 1974년 이후 영국의 국민총생산(GDP)은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우리 삶의 바탕이 되는 이 기본재는 전혀 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회의 역할도 크다. 일하라는 압력과 소비하라는 압력을 줄이고,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충분한 것을 너무 적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에피쿠로스의 조언도 귀담아 들을 일이다. 서양과 동양의 지성사와 각종 경제 이론과 철학이론을 종횡무진 훑어내려가면서 저자는 묻는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그러니까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 박종현 감수 / 부키 출판사 / 1만6000원>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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