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공포됐다. 투자은행(IB) 활성화, 다자간 매매체결 회사(ATS) 도입 등 굵직한 사안들에 가려 있어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 제도 폐지에 관한 문제다. 이 제도는 1991년 도입됐다. 주주총회 결의를 위해서는 주총에 출석해야 하는 최소한의 주식 수가 있다. 그러나 상당수 주주는 주주총회에 관심을 갖지 않아 결의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수많은 주주에게 주식이 분산돼 있는 상장회사의 어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주총에 출석하는 주식 수가 적어 주총에서 결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마련된 안전장치가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 제도다. 주식의 예탁제도에 따라 예탁결제원 명의로 명의개서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주주가 아닌 예탁결제원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다만 이 제도는 '주주가 주총에 무관심해 주주총회의 성립이 어렵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은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주주에게 통지하거나 공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영업양수도, 자본 감소, 합병, 분할과 같은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예탁결제원 외의 다른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행사한 의결권의 찬반 비율에 맞추어 의결권이 행사되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게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ㆍ섀도 보팅)'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최근 발표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회사 중 35.5%가 이 제도를 이용했으며 가장 많이 의결권이 행사된 의안은 감사(위원)의 선임(27.4%)이었다. 감사(위원) 선임을 위해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 제도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감사 등을 선임할 때 지켜야 하는 3% 의결권 제한 때문이다. 섀도 보팅이 없으면 특히 상대적으로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우에는 아예 감사(위원)를 선임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전자투표가 섀도 보팅 폐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전자투표를 위해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전자투표가 확실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회사로서는 도대체 얼마 정도의 주주가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감사(위원) 선임을 위해 필요한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는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감사(위원)를 선임해야 하는 회사는 '3% 의결권 제한'(제도)과 '주주의 무관심'(현실)이라는 두 마리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다. 그나마 섀도 보팅이 있어 등이 터지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3% 의결권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감사(위원)의 독립성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힘을 쓰기 어렵다. 물론 지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최대주주가 섀도 보팅을 이용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도 생각할 수 있다. 감사(위원)의 선임에 대해서만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것이다.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회사에만 섀도 보팅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소액주주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의결권 행사의 가능성도 넓혀주되 회사의 부담도 덜어 주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손톱 밑의 가시'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예탁결제원의 의결권 행사 제도 전면 폐지는 멀쩡한 손톱 밑에 없던 가시를 박는 꼴은 아닌가 걱정된다. 2015년 제도가 폐지되기 전에 합리적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김원식 코스닥협회 상근부회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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