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준 기초기술연구회 대외협력실장
최근 들어 '창조성'이 국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 어젠다로 다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을 유럽 창조와 혁신의 해로 선포했고,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미국 혁신 전략의 핵심은 '혁신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창조경제를 국정목표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창조성 발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창조라는 말에서 천재성이 순간적으로 발현돼 '유레카(발견했다)'라고 외치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창조적인 사회가 되려면 천재를 먼저 발굴해서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 미국의 터먼은 초ㆍ중등학생 25만명을 대상으로 3차에 걸친 지능검사를 통해 최고의 천재 집단 1470명을 추려 내고 이들을 관찰했다. 터먼은 이들이 미래 엘리트가 될 것을 기대했으나 역사적인 업적을 낸 이들은 이 집단에서 나오지 않았다. 반대로 검사 대상이었지만 천재적인 지능을 보여주지 못해 선정되지 못했던 쇼클리와 앨버레즈가 노벨상을 수상했다. 창조성을 이해하려면 영감이나 직관적인 발견 못지않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지난한 노력이 선행됐음을 알아야 한다. 천재들 혹은 예외적인 성공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관련된 주제 연구나 기술을 10년 이상 숙련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10년간 혼자 고민한다고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에 접근성이 높고 새로운 사고들과 적극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환경에 있을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창조성은 각 분야에서 일정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오랜 시간 새로운 지식을 흡수해 역량을 발전시키고 나서야 발현되는 것이다. 창조성은 개인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수준 이상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내부의 창조적 역량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적 활동이 장려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10년 이상 독창적이면서 가치를 인정받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재미일 수도 있고 명예욕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공상과학소설의 대가 아시모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에서 위대한 발견을 예고하는 경구는 '유레카'가 아니라 '이거 묘한데…'인 것이다. 미국 최고의 의ㆍ약학 연구지원 기관인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는 자기주도적 연구지원 환경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예다. 프로젝트보다는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모토 아래 스케치된 아이디어에 최소 10년을 투자한다. 10년간은 별 간섭 없이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는 비슷한 우수 연구자 집단과 비교했을 때 인용 빈도가 높은 논문의 양도 훨씬 많았지만 인용이 전혀 안 되는 논문의 비율 역시 높았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자기주도적인 활동의 실패를 두려워하면 창조성은 억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한 결과, 이 연구소의 지원을 받은 노벨상 수상자가 2000년 이후에만 11명이나 나왔다. 이는 단지 연구사회의 창조성 이야기만이 아니다. 창조성이 필요한 부분이라면 예술이든 사업이든 자기주도적 활동이 가능하고 실패가 용인돼야 한다. 실패해도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받는 사회, 다양한 문화와 아이디어가 존중받는 사회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창조성은 하늘이 개인에게 던져 준 선물이라기보다 개인이 가진 것을 사회가 키워서 싹틔우도록 하는 씨앗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송재준 기초기술연구회 대외협력실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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