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어느 조사원의 '달콤쌉쌀한' 하루

숫자 속 체험 삶의 현장통계청 소속 조사원 2000여명[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와 싸우고 경쟁하는 곳이 통계청이다. 통계청은 정기적으로 각종 지표를 내놓는 곳이다. 숫자의 향연이자 숫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부처이다. 각종 통계 수치를 집계되고 종합된 최종 결과 데이터를 받아보는 이들은 즐겁다.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그러나 수많은 조사원들의 '달콤쌉쌀한' 하루가 숨어 있다. 통계청 소속 조사원들이 표본 조사대상업체를 일일이 방문해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가 토대가 돼 최종 통계가 만들어진다. 조사원의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만 아니다. 동북지방통계청 경제조사과의 김은경 조사원의 일기는 통계 조사의 '달콤쌉쌀한' 맛을 느끼게 한다. ◆쓰레기통에 구겨진 조사표, 다시 집어들고= 김 조사원이 초보시절이었던 지난 2009년. 한 태권도학원이 표본조사 업체로 선정됐다. 조사표를 가지고 찾아간 날, 태권도학원장은 "다른 업체는 어느 정도인지 자료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김 조사원은 "조사내용은 비밀로 다른 업체의 자료는 통계법상 보여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은경 조사원.[사진제공=통계청]

이에 원장은 조사표를 구겨 휴지통에 던져 버리며 "조사에 응할 수 없으니 다시는 오지 말라!"고 윽박지르고선 휙 나가버렸다. 구겨진 조사표를 꺼내 다시 펼치고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어느 날, 태권도학원장은 "참 대단하고 끈질기시네요"라며 윽박지르면 다시는 안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끈질긴 분은 처음 본다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김 조사원은 "그때 학원장이 내민 커피 한잔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그 이후부터 태권도학원장과 인연은 계속되고 있고 오기와 열정이 통계조사의 한 밑천이란 사실을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동질감에서 시작된 또 다른 조사=김 조사원에게는 잊지 못하는 중국집 여사장이 있었다. 완고하고 깐깐한 성격을 가진 여사장은 “(조사에)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말로 협박성(?) 멘트를 자주 날리던 사람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김 조사원의 카톡스토리에 올려진 세 아이의 사진을 보고 여사장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 여사장은 "나도 세 아이의 엄마"라며 "엄마 입장에서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엄마의 심정은 엄마가 아는 것일까. 이후 이 여사장은 조사에 협조적이었다. 특히 방문하지 않고 조사표를 카톡으로 찍어 전송하거나 팩스로 보내주면 그것을 작성해 다시 보내주는 'SNS 조사'로 편리성도 더했다. 통계조사가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고 적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공감대와 이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김 조사원.[사진제공=통계청]

김 조사원은 "조사하면서 만난 모든 분들이 나의 현재 모습이고 미래 모습일 것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며 "나름대로 세상 살기의 어려움을 진실성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현재 김 조사원처럼 활동하고 있는 통계청 소속 조사원은 전국적으로 2000여명이 이른다. 이들 2000명의 조사원들의 손과 발이 우리나라의 각종 지표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고 있다.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내놓는 항목은 ▲인구·가구 ▲고용·노동·임금 ▲물가·가계 ▲보건·사회·복지 ▲환경 ▲농림어업 ▲광공업·에너지 ▲건설·주택·토지 ▲교통·정보통신 ▲도소매·서비스 ▲경기·기업경영(사업체) ▲국민계정·지역계정·국가자산 ▲재정·금융·보험 ▲무역·외환·국제수지 ▲교육·문화·과학 ▲행정 등 수없이 많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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