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지난해 사법고시와 행정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이 40%를 넘었다. 그런가 하면, 남성의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육군사관학교의 수석졸업을 2년 연속 여자생도가 차지하기도 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멋진 반란이다. 여성들의 이러한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만들겠다'라는 말에 그렇지 못한 현실이 가슴 아리게 녹아 있다. 20대에서 30대를 넘어가며 멋진 행진과 서글픈 내일이 대조되는 2013년 대한민국 여성들의 자화상이다. 앞선 여성의 성공 사례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 여성에 국한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기 성적은 양적으로도 양호하다. 3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9%로 남성(62.6%)을 앞섰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의 높은 대학 진학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2009년 82.4%로 남성(81.6%)을 처음으로 추월한 뒤 계속 '우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취업전선에서 승전고를 울리는 이들의 당찬 행진곡도 거기까지다. 직장여성은 결혼 앞에서 첫 번째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경력단절여성 중 무려 47%가 결혼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어렵게 얻은 직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겨우 고비를 넘긴 이들도 곧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임신과 출산이다. 여기서 또 한 번 24%가 직장을 떠난다. 이렇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를 맞으며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6%로 급락한다. 남은 자들 중에 남성들을 제치고 '알파걸'로 행진을 계속하는 이들이 없진 않다. 하지만 아직은 일부의 얘기다. 가정으로 돌아간 그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모습을 보이는 건 자녀 양육기가 지난 후의 일이다. 자녀학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는 마음에 소리 죽여 노동시장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당찬 자신감은 사라졌다.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 지난 연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잘나가던 한때를 기꺼이 뒤로 했다. 가정에 돌아가 '다음 세대를 이을'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열정을 다 쏟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사회는 어둡고 차갑기만 하다. 남이 아닌 내 아내, 내 아이의 엄마, 시집간 우리 딸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일이다. 가정을 위해 추운 고용시장으로 다시 나서는 그들을 격려해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과 가정이라는 가치의 굴레 속에서 쉼 없이 뛰고 있는 그들의 힘듦을 적어도 모른 채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연장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털어주고 수고를 격려하며 무뎌진 손 감각을 다시 찾아줘야 한다. 몇 해 전부터 이들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정부차원의 일자리 지원 대책이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여성 새로일하기센터(일명 새일센터)'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에 70개 남짓하던 센터는 지난해 112개로 늘어났다. 훈련 및 취업지원 직종이 사무관리, 요리 등 일부직종에 한정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제각기 다른 경력을 가진 여성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넘어 최근 '새일센터'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 3월 고용부와 여성부가 경력단절여성을 위해 맞손을 잡은 것이다. 부처 간 벽을 넘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용부 산하 폴리텍대학의 시설과 장비를 활용해 뿌리산업 직종은 물론 스마트의류디자인, 게임콘텐츠 개발 등 여성친화직종까지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구인, 구직자의 접점을 줄여주기 위해 고용부가 운영하는 워크넷과 여성부의 e-새일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시스템 통합도 추진한다. 경력단절여성 400만명 시대다. 기혼여성의 20%가 해당된다. 모쪼록 새로운 전기를 맞은 '새일센터'가 일자리를 찾는 경력단절여성들에게 든든한 기회의 사다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20대의 당찬 여성 행진이 30대에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박종구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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