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불량식품 잡으려다 골목상권 잡을 판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기자가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만물' 백화점이었다.(그 또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수업에 필요한 공책이며 표준(동아)전과를 샀고 미술시간을 위한 크레파스, 석고 등도 모두 '그 곳'에서 준비했다. 특히 돌도 씹어 먹을 그 나이에 문방구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막(학교수업)을 지나 만나는 '오아시스'였다. 선생님이나 엄마는 불량식품이라며 사먹지 말라셨지만 코 묻은 돈으로 사는 '무지개 쫀듸기'나 '쫄쫄이'는 갈증을 풀어주는 '물'과도 같았다.('쌀대롱', '차카니', '아폴로', '달고나'도 빠질 수 없다) 이제 나이가 들어 길에서 간혹 '오아시스'를 마주치면 잊혀진 어린 시절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문방구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눠 갖는 기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불량식품을 뿌리뽑고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을 보장하는 데 올해 업무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불량식품을 고의로 제조ㆍ판매하다 적발되면 영구히 퇴출하거나 최대 매출의 10배까지 과징금으로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국민안심프로젝트로 성폭력ㆍ학교폭력ㆍ가정파괴범ㆍ불량식품 등 '4대 사회악'을 뿌리 뽑겠다고 한 것에 부응한 조치였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반가워할 정책이다.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볼 수 없는 이들 제품은 부모에게 먹어서는 안 될 불량식품으로 보일 뿐이다. 사먹지 말라고 들을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못 팔게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문제는 현실에 맞는 대책이냐는 점이다. 현재 문방구 산업은 존폐의 위기에 서 있다. 대형마트 급증으로 지난 10년 새 사라진 문방구가 1만 개가 넘는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제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는 일은 거의 없다. 3년 전부터 시행된 '학습 준비물 지원제도'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연필, 노트 등 기본용품을 제외한 기타 학습준비물을 일선 학교에서 직접 준비토록 하면서 과거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야 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준비물을 대형마트들에게 뺏긴 이후 기호식품 판매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식품 판매 금지 조치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건강에 유해한 불량식품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지만 문방구 식품에 대한 위생 점검을 철저히 하거나 단속 강화 등의 중간 조치는 건너 뛴 채 '사회악'으로 규정해 무조건 없애기부터 한다는 것은 결과만 놓고 보자는 보여주기식 규제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공약 중 하나가 골목상권 살리기다. 학교앞 문방구는 영세상인이 운영하는 골목상권이다. 특히 대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생계수단 중 하나다. 골목상권 살리겠다는 정부가 골목상권을 죽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불량식품 잡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칫 불량정책으로 영세상인ㆍ소상공인의 생계를 짓밟아 문방구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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