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서울외환시장에 '도시락 폭탄'이란 용어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2008년 7월9일 외환당국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달러를 대량 매도했다. 달러 매수(롱)포지션을 유지하고 별 생각 없이(?) 점심을 즐기고 있던 외환딜러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도시락 폭탄'의 유래다. 당시 이를 경험했던 한 외환딜러는 "수천만원짜리 점심을 먹었다"고 그때를 기억한다. 대한민국 경제는 '환율경제'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수출지향적인 경제시스템을 갖고 있는 한국경제엔 이는 숙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환율은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이자 성적표다. 환율과 관련된 가장 단순한 도식이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기업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져 원화가치가 오르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은 떨어진다. 다른 모든 변수를 고정시킨 단순한 설명이다. 실제 현실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환율은 촘촘히 연결된 이해관계로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준다. 달러와 원화의 수요와 공급이 기본이고, 역외 NDF(non deliverable forward) 시장, 뉴욕ㆍ도쿄의 외환시장 등도 영향을 미친다. 수출 대금과 수입결제 금액, 선박 수주, 선물환, 글로벌 인수합병, 국제유가와 주가 등도 모두 주요한 변수들이다. 또 하나 중요한 플레이어가 있다. 바로 외환당국이다. 외환당국엔 한국은행도 포함되지만 외환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곳은 궁극적으로 기획재정부다. 한국은행법 82조에선 한국은행이 외국환 업무에 있어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에서 움직이면서 당장 세 자릿수 환율을 기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외환위기(1997년)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한국경제는 이미 세 자릿수 환율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2006~2007년이다. 2006년 들어서 원달러 환율은 곧바로 세 자릿수를 기록하더니, 2007년 10월31일에는 장중 한때 달러당 899.6원까지 떨어졌다. 당시 외환당국은 "다 죽게 생겼다"는 수출업체들의 비명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기조는 2008년 들어 180도 변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에 강만수, 차관에 최중경이 임명되면서부터다. 강 전 장관은 '환율주권론자'고, 최 전 차관도 환율에 관한 한 '매파'다. 이들의 존재만으로 환율은 뛰기 시작해 금세 네 자릿수로 복귀했다. 그러나 아뿔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공포감이 엄습하자 상황이 묘하게 변했다. 달러가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500원선 근처까지 뛰어올랐다. 이땐 오히려 환율을 떨어트리기 위한 개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당국은 역부족. 2000억달러가 간당대던 외환보유고만으로는 직접 개입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2009년 새 경제팀이 꾸려지면서 환율정책은 다시 한 번 변한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을 가급적 시장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외환시장에 대한 당국의 태도는 겉보기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권의 주기인 5년 단위로 보면 상당히 변화무쌍하다. 장관-1차관-국제금융국장-외화자금과장으로 이어지는 외환라인의 성향은 그래서 중요하다. 외환당국은 때로는 시장의 적극적인 플레이어가 되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관망자가 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현오석 KDI원장이 내정됐고, 곧 후속 인사도 있을 모양이다. 새 정부 출범과 관련해선 여러 가지가 다 관심사겠지만 외환라인이 어떻게 꾸려지는 지를 보는 것도 '근혜노믹스'의 틀을 점치는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될 듯 싶다. charlie@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charli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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