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 공공입찰서 외제 장비 고집...특정 외산 브랜드·모델명 자격 요건으로 명시하기도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국내 중소 통신장비 업체들이 정부의 역차별로 속앓이하고 있다. 공공 입찰에서 특정 외산 장비를 요구하는 탓에 국내 업체들이 홀대를 받는 것이다. 이 같은 역차별이 '손톱 밑 가시'로 작용하면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통신장비 공공 입찰에서 특정 외산 브랜드를 자격 요건으로 명시해 국내 업체의 진입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에 공지한 '헬스케어연구소 유ㆍ무선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원활한 관리 및 운영을 위해 제조사 주니퍼 네트웍스 모델로 납품할 것", "백본 등도 동일 제조사(주니퍼 네트웍스) 제품으로 구성할 것" 등이 명시돼 있다. 같은 날 공지된 '천안시 네트워크 백본스위치 구매설치' 제안서에서도 시스코 제품을 세부 규격으로 적시했다. 주니퍼와 시스코는 외산 통신장비 업체로 공공 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산은 10% 미만에 그치고 있다. 공공 시장에서 국산 장비 점유율은 2007년 6.5%에서 2011년 30%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외산 장비가 장악하고 있다. 국내 통신장비업체 관계자는 "메인이 되는 장비를 외산으로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서브가 되는 장비까지 동일 제조사 제품으로 제한하는 것은 독소 조항"이라며 "이런 방식이라면 국내 중소 업체는 시장에 진입할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외산 통신장비는 10년을 넘게 썼기 때문에 이미 검증이 완료됐지만 국산은 아직 검증이 안된 상태"라며 "메인 장비를 외산으로 쓰면 호환 등의 문제 때문에 서브 장비도 동일 제조사 제품으로 쓸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품질에 민감한 통신사들이 국산 통신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KT와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백본장비 등 메인이 되는 장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산네트웍스, 유비쿼스 등 국내 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대중소 협력 차원에서 국산 장비를 구매하고 있지만 품질이 외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국산 통신장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내 장비 시장은 시스코, 화웨이, 주니퍼, 알카텔 루슨트 등 외산이 주도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이 사실상 철수한 상태라 지금은 중소업체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통신장비 업체 관계자는 "자국 기업 우선 정책은 바라지도 않고 차별만 제거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중소 업체가 고군분투하며 외산 업체와 싸우는 국내 통신장비 시장에서 정부야말로 가장 아픈 손톱 밑 가시"라고 꼬집었다.권해영 기자 rogueh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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