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 획기적인 전환 필요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스토리가 산업이다" 문화산업 미래를 결정할 문화콘텐츠 핵심요소인 '스토리' 생산 기반 구축이 절실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그러나 관련 지원이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다. 인프라는 물론 스토리 소재 발굴 및 생산자 지원도 거의 형식적이거나 소홀하다는 지적이 높다. 18일 전문가들은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문화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요인"이라며 "정부도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편중된 정책 집행 등에서 벗어나 핵심 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이후 진행중인 각종 문화원형 DB 및 아카이브 구축 등 각종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분한 상태다. 특히 '스토리 산업'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기록문화 인프라 구축은 대부분 장기적인 과제로 설정돼 3년 후에나 활용 가능한 형편이다.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문화시장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올초 설립된 '스토리테마파크' 역시 문화 원형 자료가 빈곤해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스토리테마파크'는 옛 이야기를 발굴, 보존하고 기록문화 유산을 가공해 스토리 작가들에게 소재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실망스런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창작자들은 "테마파크의 자료가 유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 시대의 단순 자료 몇점만 나열돼 있을 뿐 우리의 정신, 얼, 멋 등 문화원형을 제대로 파악할만한 소재는 극히 드물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문화부 관계자들은 "첫술부터 배부르냐 ?"며 "이제 시작단계인데다 과제 수행기간이 남아 있다 "는 반응 일색이다. 미술, 음악 등 여타 문화 예술장르로 가면 기록물 관리 인프라 구축은 여전히 손도 못 댄 곳도 수두룩하다. 장르별 전문가들은 형식적인 전시나 행사 대신 아카이브 등 각종 기록물 보관, 축적할 인프라 구축 및 창작자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김달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회장은 "아카이브는 국가의 유산이고 공공의 기록물이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책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비엔날레 왕국', '짝퉁비엔날레 건설' 등 예술 정치화와 외형치장에 몇 십억원씩 지원하며 국민세금을 쏟아 붓기보다는 지식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판국에 스토리 생산자 육성은 언감생심이다. 최근 시행된 작가, 예술인 지원책인 '예술인 복지법'도 유명무실하다. ◇ 스토리가 왜 산업인가 ?=우리 문화정책은 스토리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간과하고 있다. 특히 스토리는 영화의 경우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환타지 등에 밀리는 등 외국류에 크게 잠식돼 있다. 최근 '호빗, 뜻밖의 여정' 즉 반지의 제왕 후속 시리즈가 연말 극장가를 강타 3일만에 100만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성공은 유럽의 전설과 신화들을 모아 새롭게 재창작, 환타지로 스토리텔링했다는데 있다. 이처럼 스토리 텔링은 문화 상품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잣대다. 가령 게임산업에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성패를 결정한다. 블리자드나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 수준은 A급 영화에 비견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한편의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될 만큼 스토리라인이 탄탄하다.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게임산업은 고용 등 산업 연관효과가 뛰어나다. 한 게임작가는 "우리는 게임 하나가 만드는 경제적 파급력이 높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스토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관광, 쇼핑, 일반 상품 역시 스토리는 매우 중요하다. 각종 마케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아이폰 신화 역시 스티브 잡스라는 스토리가 더해져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스토리는 비록 각종 문화상품의 기본요소이면서 그 자체가 독자적인 산업화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스토리가 성패가 갈린다. 애니메이션 역시 산업 파급효과가 큰 장르로 작품 하나가 자동차 수십만대 수출과 맞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공적인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산업, 관광위락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그동안 강원도 춘천, 광주 등 애니 산업 지원을 위한 클러스터 육성에 나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를 갖추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스토리 생산자인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길러내는데는 미흡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 애니메이션 산업은 ▲ 인터넷이나 게임 등으로 인해 수요 감소 ▲ 지상파 방송국의 애니메이션 방영시간 하향 이동 ▲ 애니메이션의 시청자 접점 확보 실패 ▲ 부가수익 및 광고수익, 방영료의 악화 ▲ 해외자본 의존도 심화로 인한 신 하청구조 발생' 등으로 더욱 위축되고 있다. 수요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콘텐츠 부족이 원인이다. 김은정 만화 스토리 작가(44)는 "요즘엔 신입사원의 자기소개서도 스토리 텔링해야 먹힌다. 관광, 애니메이션, 게임산업에서도 스토리는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다. 정책담당자들이나 문화 현장에서 스토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육성해야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며 "한국적 스토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부터 내놓아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한편이 성공할 경우 자동차 수십만대 수출 효과가 있다는 말에 그저 정신줄을 놓을 뿐 스토리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 스토리 산업 육성 어떻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유독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많다.일기류 같은 기록, 설화, 민담, 전설, 서간문, 역사적 사건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료 등은 매우 유용한 '이야기 소재'가 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신화와 전설을 재창조하는 작업이 바로 스토리산업이다. 이를 산업 측면으로 인식. 문화콘텐츠로 전환시키는게 경쟁력 강화의 첩경이다. 실례로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으로 수없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 '환단고기' 등 다양한 신화와 설화가 존재한다. 다양한 상상력을 기초로 하는 이야기 생산자들은 보다 자유롭게 가공할 수 있는 원형들이다. 한국적 문화원형인 '음식'을 테마로 한 대장금의 성공에서도 알 수 있듯 수많은 기록물에 대한 번역, 해석, 배경 등은 물론 일반 부녀들의 서간문 하나도 꼼꼼히 챙겨야할 상황이다. 정형수 작가는 "한류가 맹위를 떨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이 및 아이돌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K-팝'으로는 코리아니즘(Koreanism)을 대표할 수 없으며 지속성에도 한계가 있다"며 "전통문화유산에서 실질적인 콘텐츠를 찾는 스토리 라인 발굴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스토리 산업을 위해선 인프라 구축과 원형 발굴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스토리 생산자 육성이다. 박홍식 영화감독은 "우리의 스토리산업은 갈 갈이 멀다"며 "좀더 넓은 시야를 갖고 이야기 생산자 육성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이규성 기자 peac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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