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밤 10시. 공연의 시작을 알린 것은 애국가였다. 서울광장 일대에 운집한 8만여명의 시민들은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합창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싸이는 관중들을 지휘했다. 싸이의 '개선'을 알리는 신호였다. 노래가 끝나고 싸이가 깊이 몸을 숙여 인사하자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싸이는 '라잇 나우(Right Now)'로 곧장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광장 가운데로 뻗은 돌출무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7만여명의 관중이 팔을 흔들며 뛰기 시작했다. 4일 오후 10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싸이의 글로벌 석권 기념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공연'은 초대형 축제를 방불케 했다. "올해로 데뷔 12년을 맞이한 가수, 12년만에 전성기를 맞은 가수, 다른 나라에서 신인 가수가 돼 버린 싸이입니다. 반갑습니다." '라잇 나우'와 '연예인'을 잇달아 선보이며 광장을 흔들어 놓은 싸이가 인사를 건네자 관중들은 끊임없는 환호를 보냈다.
이 날 오후 1시 무렵부터 서울광장에는 앞자리를 선점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할 즈음이 되자 8만여명의 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소공로와 을지로, 세종로 일대 교통이 전면 통제된 가운데 무대에서 약 200m 떨어진 대한문 로터리 끝까지 시민들이 가득 들어찼다. 무대 뒤편에도 스크린이 설치돼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싸이는 노련했다. 본무대와 돌출무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그간 콘서트에서 보여 온 것처럼 관중들을 쉽게 흥분시켰다. '새', 본인이 작사·작곡한 DJ DOC의 '나 이런사람이야'등을 연달아 보여준 뒤 광장 오른편부터 차례대로 함성을 이끌어냈다. '흔들어주세요', '아버지', '위아더원' 등 히트곡들이 이어지는 동안 관객들은 모든 노래를 거뜬히 따라불렀다. "4년마다 여기 와 봐서 아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말도 안 된다." 싸이 본인도 상상을 뛰어넘는 인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객석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중장년층 관객이 많고 어린 관객도 많다. 생각보다 외국인 관객도 많이 있다." 실제로 광장에는 프랑스 국기와 브라질 국기, 미국 국기 등을 흔드는 외국인 관객이 상당수 모였다. 싸이가 무대에서 브라질 국기를 가리키자 관중들은 함성을 보냈다.
곡 사이사이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싸이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한국에서 누가 해 낼 줄은 알았지만 나일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시청 광장에서 대형 공연을 펼치게 됐다는 것에 대한 감격도 드러냈다. "2002년 월드컵 때 공연하다가 만든 곡이 '챔피언'이다. 단독으로 서게 될 줄 몰랐다." 싸이는 '낙원'의 가사를 바꿔 불렀다. "난 너와 같이 노래하고 난 너와 같이 소리지르고 난 너와 같이 같은 곳에서 여기가 한국인 거야" '월드스타' 싸이의 '내한공연' 서비스였다.
'낙원'에 이어 윤복희의 '여러분'을 부를 때 카메라는 관객들을 비췄다. 대형 스크린에는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싸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잠시 노래를 잇지 못했다. "12년동안 가수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 못 섰던 날도 많았다. 후회하면서 살았던 시간이 참 길었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한다. 이 무대에 나를 세워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싸이는 "한국에 사는, 두 아이를 가진 뚱뚱한 남자인 나를 싸이로 만들어줘서 온 몸으로 감사한다"며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공연의 정점은 물론 '강남스타일'이었다. 싸이가 선글라스를 꺼내든 순간부터 함성은 커졌다. "12년만에 전성기를 가져다 준 노래, 타국에서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과 함께 합창 없이 불렀던 노래"라며 '강남스타일'을 시작하자 8만여명이 '말춤'을 추며 '강남스타일'을 따라 불렀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싸이는 "여기서 모두 말춤을 추면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약속된 1시간 가량이 흘렀지만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강남스타일'이 마지막 노래"라고 했던 싸이 역시 앵콜로 화답했다. "붉은 노을', '여행을 떠나요' 등 5곡을 메들리로 선보였고 "더 이상 무대에서 병나발을 불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 없다"며 소주를 들이키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가수로 살면서 가장 영광스럽고 빡세고 벅찬 날이다." 이상은의 '언젠가는'과 '챔피언'이 이어졌고 대미는 다시 한 번 '강남스타일'이 장식했다. 춤추고 환호하는 관중들을 바라보던 싸이는 '빌보드 1위를 하면 웃옷을 벗고 말춤을 추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이 날 공연은 싸이의 말대로 '영광'이었다. 월드컵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모이는 서울광장이지만 한 가수의 공연에 8만여명이 찾아온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가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나 다름없다. 교통이 통제된 차로를 거닐며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천에서 온 최영재(32)씨는 "한 가수를 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며 "월드컵 때보다 열기가 더 뜨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 sj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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