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떨기 꽃 같은 여인, 진부하지만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신인 시절 MBC <출발! 비디오 여행> MC로 활동하며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하던 맑은 목소리도, 조심스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동작도, 사슴같이 그렁한 눈망울과 불혹의 나이를 지났음에도 소녀처럼 천진한 태도까지 그 고운 자태를 완성하는 요소다. tvN <응답하라 1997>에서 억양 센 부산 사투리로 전라도 출신 남편(성동일)의 기를 죽이고 H.O.T의 광팬인 딸 시원(정은지)을 팍팍 밀어주는 화통한 엄마의 모습과 정반대 지점에 진짜 이일화가 서 있다. “나이가 들어도 카메라 앞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데 이것저것 가리다 보면 평생 열 작품도 못할 것 같아서” 기존의 단아하거나 세련된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캐릭터에 도전한 <응답하라 1997>은 누가 봐도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경북 영양이 고향이고 부산에서 자란 이일화의 변신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평소엔 다소곳한 여성이시지만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길 때는 욱하는 면이 있으셨던 어머니로부터 ‘경상도 엄마’의 캐릭터를 가져왔고, 한동안 잊고 있던 사투리와 고스톱도 다시 배우며” 작품을 준비했음에도 그는 공의 대부분을 제작진과 상대역에게 돌린다. “(성)동일 오빠가 SBS 공채 탤런트 1기 출신이고 내가 2기인데, 함께 연기를 한 건 처음이지만 오빠 덕분에 내가 원래 할 수 있는 역량의 두 배가 넘도록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부 싸움을 하다 “때리바라!” 하면서 달려드는 장면에서도, 촬영 전에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오빠의 기를 받으니까 나도 모르게 더 큰 소리가 나왔다. (웃음)”수줍음 많던 부산 여고생에서 서울에 올라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갓 스물의 신인 탤런트로, 그리고 한창 떠오르던 시기에 활동을 접었다가 다시 돌아와 배역의 비중과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의 길을 걸어온 이일화에게 데뷔 후 지난 20여 년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 과정을 통해 “아픔도 상처도 즐거움도 잠깐 한때,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진리를 체득했다. 그래서 “당장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 현재에 감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연기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는 이일화가 ‘긍정적인 기분을 만들어주는 음악들’을 추천했다. <hr/>
1. Amanda Seyfried, Meryl Streep ‘Slipping Through My Fingers’가 수록된 <맘마 미아! OST>“<응답하라 1997>과 함께 촬영한 KBS <사랑아 사랑아>에는 감정 신이 많다 보니 준비할 때 음악을 많이 듣는데 그중 제일 자주 듣는 앨범이에요. <맘마 미아!>는 원래 참 좋아하는 작품이고,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정말 좋거든요. ‘The Winner Takes It All’도 멋진 곡이지만 저 역시 중학교 1학년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메릴 스트립이 딸을 시집보내는 날 아침에 부르는 ‘Slipping Through My Fingers’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게 돼요. 아이가 어릴 때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가장 예민할 사춘기만은 잘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 이문세의 <이문세+발칙한 여자들 OST>“이문세 선배님이 80년대에 발표하셨던 ‘소녀’나 ‘광화문 연가’ 같은 노래를 참 좋아했어요. 제가 연기자가 되고 나서 나중에 같은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마음이 정말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고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됐죠. 예전에 한 번은 미국에 갈 일이 있었는데, 공연 때문에 LA에 오셨던 선배님과 우연히 마주쳤어요. 정말 바쁘고 정신없으셨을 텐데 ‘딸 선물 사다 줘’ 라면서 용돈을 챙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알 수 없는 인생’은 지나온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면서도 유쾌한 가사가 좋고 멜로디도 밝아서 한동안 제 컬러링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곡이에요.”
3. 김동규의 <3집 My Favorits>“아직 9월이지만 다가올 10월을 기다리면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멜로디도 참 좋지만, 우리말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요.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처럼 멋진 표현을 쭉 듣다 보면 마음에 잔잔하면서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시크릿 가든의 ‘Serenade To Spring’에 작사가 한경혜가 가사를 붙이며 계절이 봄에서 가을로 바뀌었지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계절을 불문하고 결혼식 축가로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4. Secret Garden의 < Once In A Red Moon >“기운이 없거나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들으면 힘이 생기는 노래에요. 원곡도 좋아서인지 굉장히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는데, 어느 누가 부른 버전이라도 다 좋더라고요.” 시크릿 가든의 롤프 러브랜드가 아일랜드 민요를 편곡해 만들었고 아일랜드의 소설가인 브렌던 그레이엄이 작사한 ‘You Raise Me Up’은 브라이언 케네디가 불러 녹음한 버전이 수록된 < Once In A Red Moon > 발매 이후 지난 10년간 100회 이상 커버되었으며 특히 CCM, 가스펠 뮤직 계열에서 사랑받고 있다.
5. 자전거 탄 풍경의 <1집 자전거 탄 풍경>“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요즘 같은 계절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에요.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가슴 안을 싸하게 씻어 내려가는 감동을 느껴요. 아련한 추억, 애틋한 감정이 절로 피어나는 것 같죠.” 영화 <클래식>의 상징처럼 기억되는 명곡 ‘너에게 난, 나에게 넌’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포크 그룹 자전거 탄 풍경은 최근 MBC <골든 타임> OST ‘그댄 아나요 (Feat. 이지민, 김유진 of W.H.O)’를 발표하기도 했다. <hr/>
데뷔 초의 자신에 대해 “굉장히 겁 많은 신인이었다. MBC <한지붕 세가족>에 출연하게 되었을 땐 첫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종일 울었다”고 회상하는 이일화는 20년이 지난 지금의 자신을 향해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며 연기한다. 사람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인데, 그걸 알고 고쳐 나갈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역은 돌멩이도 맞을 거고, 어떤 역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작은 비중이라 해도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대신 내가 들어가서 더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한다”는 이 배우에겐 여전히 우리가 놀랄 만한 모습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취재팀 글. 최지은 five@사진팀 사진. 이진혁 elev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