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부가 오늘 발표한 내년 예산안은 겉으로 균형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속으로 균형을 잃었다. 이번 예산안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4% 내외'가 되는 것을 전제로 작성됐다. 그러나 3.4%를 제시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최근 전망을 수정한 예측기관들은 대체로 내년 성장률이 3%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본다. 정부가 0.5%포인트 정도 더 높게 잡은 셈이다. 늘어난 복지수요 등 세출요인에 세수를 꿰맞추려다 보니 성장률을 높혀 잡은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그만큼 내년에 예산 대비 세수 결손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결과로 내년 예산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3% 적자로 짜였다. 정부는 '엄격한 의미의 균형재정'은 아니지만 '균형재정 기조'는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GDP의 0.3% 이내 적자는 균형재정으로 인정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말장난이다. 세입예산을 잔뜩 늘려잡고도 그 정도라면 현 정부는 국정과제로 고수해온 '2013년 균형재정 달성'에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균형예산에 집착해 계수상의 적자 폭을 억누른 탓에 무리가 따랐다. 무엇보다 법인세에 비해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세수 목표가 과다해졌다. 올해 연간 세수 전망치와 내년 예산상 세수 책정치를 세금 종류별로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법인세는 올해 47.5조원에서 내년에는 48조원으로 0.5조원(1.0%) 증가에 그치지만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를 포함한 소득세는 45.2조원에서 50.6조원으로 5.4조원(12.0%), 부가가치세는 54.1조원에서 59조원으로 4.9조원(9.1%)이나 증가한다. 법인세는 80%가량을 대기업이 부담한다. 그러니 대기업보다 봉급생활자ㆍ자영업자ㆍ소비자의 납세부담을 늘려 균형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것이 정부의 속셈인가 하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이는 조세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될 뿐더러 당장 후년부터 재정건전성에 방해가 될 것이다. 억지 균형은 불균형 압력을 키운다. 이번 예산안은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국회 심의를 받게 된다. 대선후보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정부 예산안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조세부담이 보다 형평성 있게 배분되도록 손질하는 정치권의 역할이 어느 해보다 중요해 보인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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