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3년 째에 접어든 유럽 부채위기의 핵심은 그리스 충격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좀더 덩치가 큰 국가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파장이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만 생긴다면 그리스 파산이나 유로존 탈퇴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금리 하락 여부에 시장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21일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금리 안정을 위해 현재 유로존에서 ▲유로본드 ▲유럽안정기구(ESM) ▲유럽중앙은행(ECB) 개입 등 3가지 유력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각각의 방안들에 대해 분석했다. 이들 3가지 방안은 모두 이전에 시도되지 않았다는 점과 또 그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슈피겔은 이들 3가지 방안 모두 약점과 위험요인이 있지만 유럽은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덜 위험한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본드= 통합효과 있지만 도덕적 해이 논란유로본드는 유로존이 하나의 공동 채권을 발행해 부채를 공유하는 방안으로 유로존은 하나라는 가장 확실한 신호를 보여줄 수 있다. 독일이 유로본드 발행에 참여하는 상황이라면 유로존 국채금리 인하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유로본드는 유로존 개별 국가들 간의 신용등급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독일의 높은 신용등급을 이용해 그리스와 같은 낮은 신용등급 국가들을 감추는 셈이다. 이 때문에 유로본드와 관련해서는 도덕적 해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차피 유로본드가 독일의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만큼 이탈리아나 스페인, 그리스 같은 국가들은 굳이 금리를 낮추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독일 덕분에 노력하지 않고도 저금리로 돈을 계속 차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유로본드 발행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 베렌버그 은행의 홀거 슈마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본드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실 국가들의 재정을 혹독한 재정 긴축이 우선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유로존 재정 정책을 공동화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메르켈은 올해 1월30일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영국과 체코를 제외한 25개국이 참여하는 신 재정협약을 주도했다. 신 재정협약은 재정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신 재정협약은 이를 바탕으로 부채를 공유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유로본드 발행도 재정 협약을 통한 부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ESM= 정부부담..은행면허는 꼼수 당초 올해 7월 ESM이 출범할 계획이었지만 실현되지 못 했다. ESM은 현재 운용 중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신하게 된다. EFSF가 임시로 운영된 것과 달리 ESM은 항구적인 구제금융 펀드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제금융에 대한 부담 때문에 ESM이 충분한 자금을 갖지 못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지난 17일 올해 상반기 부채위기 해결을 위한 이탈리아 지원 규모가 166억유로로 전년 동기의 61억유로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정작 구제금융이 가장 필요한 국가 중 하나지만 구제금융 펀드에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또 ESM 최대 지분국인 독일은 현재 EFSF에 대한 출연금을 포함해 ESM에 1900억유로 이상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ESM 기금 규모 5000억유로마저 2014년 중반까지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내에서 ESM에 대한 위헌 소송이 제기됐고 독일 헌법재판소는 내달 12일 위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위헌으로 판결나면 ESM이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부담 때문에 유럽 지도자들은 수 개월 동안 정부 부담 없이 ESM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심해왔다. 바로 ESM에 은행 면허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ESM에 은행 면허를 부여하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필요한만큼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ESM이 은행 면허를 부여받으면 일반 은행들처럼 부실 국가 국채를 매입한 후 이를 담보로 ECB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렇게 받은 돈으로 다시 국채를 매입하면 무제한 매입이 가능하다. 사실상 ESM에 유로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CB는 규정상 유럽 정부들에 직접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로존 국채를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수 밖에 없는 반면 ESM은 유로존 정부로부터 액면가로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ESM 역시 정부 기관에 매우 가까운 형태라는 점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쾰른 경제연구소의 미하엘 후터 소장은 ESM에 은행 면허를 주는 것은 (ECB의 정부 지원 금지)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ECB 개입= 물가안정 임무 망각..독립성 문제도 부각ECB가 최종 대부자로서 시장에 개입해 무제한으로 유로존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위기 국가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ECB의 가장 큰 임무는 물가 안정이고, 국채 매입을 통해 시장에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이러한 점을 이유로 들어 올해 3월부터 유로존 국채 매입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달 초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자신을 믿으라며 국채 매입을 재개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뒤를 이어 ECB가 유로존 국채 매입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금리 상한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나름 국채 매입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금리 상한제 도입이 사실상 무제한 국채 매입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리 상한선을 도입하는 것은 결국에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신뢰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ECB의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쟁을 부추길 수 있다. 또 간접적으로 유로존 국가들이 부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ECB의 신뢰성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게다가 ECB가 매입한 국채를 누가 감독하고 통제할 것이며 국채 금리 상한은 얼마로 정할 것인가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그 성격상 독립성을 보장받은 기구인 ECB가 취한 조치들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문제로 남는 것이다. 슈마인딩 이코노미스트는 이 때문에 ESM과 같은 정치적 기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별도의 정치기구를 통해 어떤 국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ECB의 국채 매입 지원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박병희 기자 nu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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