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승환 기자]지난해 12월 현업에서 은퇴한 이중모 씨(55)는 현재 경기도 안산의 한 윤활유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창업 대신 재취업에 도전해 이룬 성공이었다.쉰 다섯의 나이에 새 직장을 얻은 이씨에겐 27년 만에 새로 받은 '명함'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스피치 강사'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찾게 된 숨겨진 재능이었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이씨에게 하루는 짧기만 하다. 인천 남구의 한 까페에서 이씨를 만나 '성공기'를 들었다.
인천 남구의 한 까페에서 만난 이중모 씨(55).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얼굴엔 활력이 넘친다. 그는 재취업과 함께 '스피치 강사'라는 또 다른 명함을 얻었다. /노승환 기자 todif77@
이씨는 '베이비 부머' 세대다. 혹자는 베이비 부머를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정작 자식들로부터는 버려진 첫 세대'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만큼 책임은 막중하되 자신을 보살필 겨를이 없었던 세대다.인터뷰 첫 머리, 그는 지난해 12월 은퇴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1985년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으니 27년 만이었다. 말로만 듣던 은퇴가 내 일이 되고 보니 갑작스런 상실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이씨는 은퇴와 동시에 일자리 찾기에 나섰다. 처음엔 잘 풀리는 듯 했다. 인천 남동산업단지 내 '전직지원센터'에 다니다 알게 된 한 은퇴자가 동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당장 일이 될 것처럼 말하던 그에게선 두 달 넘게 소식이 없었다. 평소 알던 선배에게도 어렵게 연락이 닿았지만 알아봐 준다던 일자리는 역시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50대 중반의 은퇴자에게 호락호락한 자리란 건 없었다. 이씨는 노사발전재단이 운영하는 전직지원센터에 매일 같이 '출ㆍ퇴근 도장'을 찍었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심리ㆍ적성검사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구직 전략 세우기까지 상담사와 1대 1 상담을 계속했다. 첫 직장을 구하는 대학 졸업반 학생 같았다. 27년 만에 다시 쓴 이력서만 수십 통이었다.기회는 우연히 왔다. 상담사의 권유로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를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방송을 보고 한 중소기업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20여 년 전 경쟁업체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이씨는 "10년 전 회사를 차렸는데 얼마 전 자리가 하나 났다는 얘기였다. 연봉은 퇴직 당시의 절반 남짓이었지만 마다할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입사원서를 냈다"고 말했다.마침 그 회사는 윤활유 제조업체였다. 이씨는 결국 27년 동안 함께 해온 윤활유와 다시 만났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은퇴를 '번복'하는 데에는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취업보다 더 큰 소득은 따로 있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씨는 전 직장에서 자신이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으로 불렸던 때를 떠올렸다. 전직지원센터에서는 적성검사를 통해 이씨의 소질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씨에게 제안한 새 직업이 일명 '스피치 강사'였다.이씨는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전문강사로부터 스피치 강사 교육을 받았다. 평생 윤활유 기술개발만 해오던 나에겐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다. 남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재미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재발견이었다. 이씨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강사 교육을 마치자 센터에서 곧바로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주제도 '은퇴 후 재취업 요령'이었다. 재취업에 성공하기 직전인 지난 6월 14일 노사발전재단에서 이씨는 강단에 섰다. 초보강사로서 첫 '데뷔 무대'였다이씨는 "힘들었던 재취업 과정을 소재로 삼아 그런지 얘기가 술술 풀려갔다. 수 십 명의 청중들이 내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신이 났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직 직업 강사라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기회만 된다면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이씨는 다음 강의를 찾고 있다. 주제는 무엇이라도 좋다. 회사 일로도 이미 밤낮이 없지만 새로 찾은 '천직'을 포기할 순 없다. 그의 꿈은 전문 사회 강사다. 틈틈이 공부해 사회교육 관련 자격증도 따고 대학원에도 다닐 생각이다. 스피치 강사로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원대한' 포부도 갖고 있다. 청소년이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직업상담사는 이씨가 갖고 싶은 또 다른 직업이다.이씨는 "은퇴는 기회"라고 했다. 그는 "은퇴를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여겼다면 사회 강사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이 나이를 먹고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다"며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도전을 권했다.인터뷰 말미, 그는 은퇴 세대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호소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은퇴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우리 같은 베이비 부머 세대는 특히 더 그렇다. 사회적으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제도화될 필요가 있고 본다"고 말했다.노승환 기자 todif77@<ⓒ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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