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는 간 곳마다 바로 고향인 것을/그 몇이나 객수 속에 오래 있었나/한 소리 크게 질러 삼천세계 깨뜨리니/눈 속에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었구나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一聲喝破三千界 雪裏桃花片片紅
한용운의 '깨달음의 노래'■ 만해 나이 39세 때인 1917년 12월 3일 밤 열시. 좌선을 하다가,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며 바깥에서 뭔가가 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렸다. 그때 갑자기 의심하는 마음이 풀렸다. 그 밤에 쓴 시이다. 1916년 만해는 서울 계동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편집하고 있었고, 이듬해엔 설악산 오세암에서 면벽하고 있었다. 화두는 '구름이 흐르거니 누군들 나그네 아니랴, 국화 이미 피었는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였다고 한다. 만해는 화두를 뒤집었다. 머무는 곳이 바로 고향이니 누군들 주인 아니랴. 눈 속의 복사꽃은 모순된 두 사물이 결합함으로써 의미 심장해지는 경지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만해는 저렇게 대답한 것이다. 어느 겨울 눈보라 때리는 밤에, 지금은 작고한, 문화부 기자 선배 하나는, 만해의 저 시를 피를 토하듯 읊었다. 일성할파삼천계하니, 설리도화편편홍이라. 쩌렁쩌렁 도화 피는 소릴 들었다.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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