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ㆍ김재연, 진보대중정당 역사적 실험 무너뜨리나

[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 이후 혁신비대위와 민주노총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석기(왼쪽) 당선자와 김재연 당선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조건부로 철회했다. 이석기ㆍ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 등 주체사상파(주사파)로 분류되는 NL(민족ㆍ민주)계 인사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지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결국 이석기ㆍ김재연 당선자 등 당권파 세력이 계속 버티면 지난 12년 동안 이어져온 헌정사상 최초의 진보적 대중정당 실험은 좌초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당사에 진보적 대중정당의 발자취가 어떻게 남을지가 이들에게 달려있다는 얘기다. 통합진보당의 산파 역할을 한 민주노동당(민노당)은 지난 2000년 진보진영의 대통합과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며 등장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영국식 노동당' 모델인 대중정당 노선을 채택했다. 민노총 역시 2000년 민노당 창당과 2004년 총선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2008년 초 분당 위기에 처한 민노당을 구해낸 것도 민노총이었다. 이렇게 진보정당 역사에 한 축이자 대주주로 참여해온 민노총의 지지가 철회된다면 통합진보당의 존재 의미와 가치는 퇴색되거나 후퇴할 수밖에 없다.김영훈 민노총 위원장은 이날 회의 후 "2차 중앙위원회(12일)에서 결의한 혁신안이 조합원과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실현될 때까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조건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진보노동정당의 길을 개척해왔던 통합진보당은 대주주격인 민노총의 지지를 잃었지만, 혁신안 시행을 통해 재기할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김영훈 민노총 위원장은 18일 MBC 라디오에 나와 "정말 많은 시민들과 강기갑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원장께서 마지막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데 제 손으로 산소호흡기를 떼는 게 이 시점에 맞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다"며 "마지막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진보당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노동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진보정당의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며 "그것이 좌파의 이익이나 소수의 이익을 강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비례대표 당권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민노총의 이번 결정은 지지철회와 유보를 주장하는 민노총 내 세력들의 이견 사이에 절충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금의 통합진보당은 지지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 아래 지지를 영구적으로 철회하기보다는 조건을 내세워 쇄신을 압박하고 추후 통합진보당의 노동 중심 강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도 꾀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손을 놓지 않은 것은 '의견조율'의 성격도 있지만 통합진보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산파 역할을 한 민노총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통합진보당을 과연 외면하는 것만이 정답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통합진보당으로서는 이날 결정으로 일단 최대 대주주격인 민노총과의 완전 결별과 집단 탈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민노총은 통합진보당 진성당원 7만5000명의 46%에 이르는 3만5000여명을 점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이로서 강기갑 의원이 이끄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힘을 받게 됐다. 통진당의 최대 주주인 민노총이 강기갑 비대위에 힘을 적극 실어준 만큼 당권파 중심으로 구성된 당원 비대위는 명분과 핵심 세력의 지지를 동시에 잃고 사면초가 상황에 몰리게 됐다. 당권파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와 지도부가 혁신비대위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또 민노총이 이석기ㆍ김재연 당선인 등 비례대표 총사퇴를 직접적으로 권고하지 않았지만 '당원과 국민의 열망에 부응할 때까지 혁신하라'고 주문한 만큼 사실상 당권파 비례대표에 대한 사퇴압박에 나선 것과 다름없다. 강 비대위원장은 전날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을 찾아가 "지지철회나 탈당이 아니라 당의 주인으로 나서서 당의 쇄신과 혁신에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을 이끌었던 권영길ㆍ문성현ㆍ천영세 전 대표도 전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통합진보당은 혁신비대위를 중심으로 전면적 쇄신에 나서야 진보정치가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또 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를 향해 "등돌리는 노동자의 마음을 돌려세우고 노동자 정치세력의 초심을 확인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선택할 올바른 길"이라며 "외면과 냉소는 노동자의 길이 아니므로 민주노총은 역사가 부여한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민노총의 이번 결정으로 강기갑 혁신비대위에 힘이 실리게 됐지만 모든 문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당권파가 조직한 당원비대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만큼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노총이 최후통첩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20일까지 비례대표들이 사퇴 여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종일 기자 livewi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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