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명훈 주필]4ㆍ11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지 5일, 벌써 지나간 역사가 됐다. 금배지를 처음 달게 된 설렘도, 막판까지 다투다가 낙선한 아픔도 이제는 웬만큼 진정됐을 게다. 총선 결과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분석과 평가, 전망을 쏟아냈다. 하지만 선거 이전을 돌아보면 그들의 별 볼일 없는 신통력에 헛웃음이 터진다. 무섭고 날카로운 것은 감춰진 민심이다. 빨간색, 노란색 점퍼로 시장을 돌면서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아 주던 보통사람들. 웃음 뒤쪽에 감춰진 비수 같은 민심. 그 칼날이 지난 11일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개표를 지켜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선이 멀지 않은데, 민심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선거 후 만나 본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에 그 답의 일단이 있었다. # 투표 당일 - 40대 이발소 주인저녁 무렵에 들른 동네 이발소. 중년의 주인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투표는 했습니까?" 선거에 대한 관심일까, 지나가는 인사말일까. 이어진 말은 엉뚱했다. "국회의원 되면 정말 평생 연금이 나옵니까? 한 달만 해도 죽을 때까지 나온다는데, 말이 됩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오늘도 일하고, 평생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데."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선거했다고 뭐 달라지겠어요?" 그에게 '선거'는 곧 부도덕한 국회의원을 한 번 더 뽑는 것이고, 선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민생'이었다. # 선거 하루 뒤 - 50ㆍ60대 장ㆍ노년 점심 자리에서 만난 4명의 50ㆍ60대 남자들. 중견기업 대표, 임원, 자영업자, 은퇴 백수로 보수 내지 중도 성향의 중산층이다. 밤잠 설치며 시청한 TV 개표 방송이 단연 화제다. 관전평은 '드마라보다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했다'는 데 일치. 심상정, 정두언, 이재오…. 박빙의 승부처가 줄줄이 식탁 위에 올랐다. "완전 여성 천하야. 박근혜, 한명숙, 이정희에 이혜훈, 박선숙까지." "딸들에게 잘 보여야 해." 나이든 남자들의 뒤늦은 현실 파악인지 무력한 저항인지 애매하다. 화제는 여성에서 '여왕'으로 옮겨갔다. "박근혜 대단해, 대선도 통할까?" "여당엔 경쟁자가 없잖아." "대선은 다르지." "안철수는 나오나, 안 나오나." "민주당으로 갈까?" "문재인은 힘 빠졌지?" "김두관도 있잖아." 대선이 분위기를 달군다. 최대 관심사는 박근혜 대세론과 안철수 변수다. 급기야 은밀한 집안 정치성향까지 등장했다. "쭉 2번 찍겠다던 집사람이 선거 날 갑자기 바뀐 거야. 심판, 심판 외치는 것, 투표하라 난리 치는 것 거슬린다. 젊은 애들도 무섭다면서…." 방황하던 중도 표심의 향방과 보수층 집결을 떠올릴 수 있는 중대(?) 사례 발표였다. 토론의 끝은 현실로 돌아왔다. 회사는 잘되나. 대기업 등쌀에 죽겠네. 달라질까. 이봐, 꿈 깨. # 선거 이틀 뒤 - 20대 대학생 13일 오후 실습 과목을 듣는 3, 4학년 대학생 14명. 투표한 학생은? 놀랍게도 13명.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과의 괴리는 무엇일까. 한 학생이 뼈 있는 말을 했다. "트위터는 통하는 사람끼리 하는 '그들만의 소통'이다. 이를 여론이나 대세라 착각하는 야권이 문제다." 총선 소감은 '실망'이 지배했고 화살은 야당에 집중됐다. "공허한 심판론에 안주한 게 문제다." "제대로 제기한 이슈나 정책이 있었나." "투표 독려의 오버는 정작 중요한 것을 묻어 버렸다." "젊은 층 낮은 투표율 책임론이 무엇보다 기분 나쁘다." 반면 여권을 보는 눈은 복합적이었다. "보수에도 숨은 표가 있었다니." "박근혜 무섭다." "12월 대선은 다르겠지?" 요동치던 민심의 바다는 다시 평온해졌다. 하지만 지금 물밑에서 민심은 또 다른 역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박명훈 주필 pmhoo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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