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경남 양산시 북정동에 위치한 6000평 규모 (주)비엠티의 공장. 정밀 부품 공장이라 조용한 공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주)비엠티는 계장(계기, 제어장치)용 ‘피팅’과 ‘밸브’를 생산하는 회사다. ‘피팅’은 튜브나 파이프와 같은 관과 관을 연결해 주는 장치고, 밸브는 관에서 흐르는 유체의 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관도 그 굵기가 다양한데 비엠티는 신체로 치자면 대동맥 보다는 모세혈관 수준의 정밀한 배관에 들어가는 피팅과 밸브를 주로 생산한다. 현재 배관 부품 업계에서 선두주자로 꼽히는 업체는 미국의 ‘스웨즈락(Swagelok)’이다. 윤종찬 (주)비엠티 대표이사는 “배관 부품 업계 선두업체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고 수백 개의 업체가 나머지 20%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형국”이라고 업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일견 ‘압도적’인 선두업체의 점유율에 나머지 업체의 활약이 미미하게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스웨즈락은 난공불락의 성(城) 같은 존재기도 하다. 때문에 “스웨즈락 제품에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뭐냐”라는 바이어의 질문에 대부분의 배관 부품 업체는 “가격이 더 저렴하다”라는 대답만 할 뿐이다. 하지만 비엠티는 이 외에도 할 말이 있다. 할 말이라기보다 보여줄 게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피팅(I(integration)-Fitting)’이 그것이다. 아이피팅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여기에는 일반 피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느다란 빨간 선이 있다. 플라스틱과 같은 재질이 피팅을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관을 연결해주는 피팅은 시공 시, 일과 사분의 일만큼 돌려야 잠긴다. 때문에 일과 사분의 일 지점에 매직으로 표를 해두고 딱 그만큼만 돌린다.(주)비엠티는 정밀한 배관에 들어가는 피팅과 밸브를 주로 생산한다. 윤종찬 대표가 완성된 피팅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시공이 굉장히 까다로운 셈이다. 아이피팅은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단숨에 생략시킨다. 적당량 돌아갔다 싶으면 피팅을 감싸고 있던 빨간 선이 탁하고 튕기면서 분해된다. 시공자가 일일이 잠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단축되고 훨씬 정확하다. 아이피팅은 현재 국내뿐 아니라 국제특허까지 출원했으며 국내외 고객사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비엠티가 이처럼 차별화된 피팅을 제작하게 된 저변에는 환희와 시련, 그리고 도전이 버무려진 25년의 세월이 깔려있다. 25년전 직원 3명, 월매출 150만원으로 출발 윤 대표는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살려 대형건설사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던 80년대 초,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부산의 사상공단에 취직하게 된다. 첫 직장은 조선소에 납품되는 철의장품을 만드는 공장. 여기서 기계 금속과의 인연을 맺게 된 윤 대표는 “그 때부터 기계금속의 매력에 흠뻑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이른 감이 있지만 그는 직장생활 3년차 때부터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키웠다. 비엠티(당시 경풍기계공업사)는 1988년, 이렇게 탄생했다. 첫 직장은 직원 3명에서 시작했다. 한 달 매출은 150만원 가량. 슬레이트로 지어진 자그마한 건물에서 단조업체에 납품하는 부품을 생산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영업은 녹록치 않았다. 개업 2년 째 되던 해에는 왜 그리 사고가 나던지, 한 달 매출이 200만원이 안되는데 제품 불량으로 900만원 손실이 났던 적도 있다. 주문을 받았던 단조업체에 찾아가서 불량품이 나왔다고 이실직고했다. 평소 성실한 일처리로 쌓은 신뢰감 덕분인지 단조업체에서는 변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소재를 다시 줄 테니까 재가공을 해 달라”는 고마운 요청이 왔다. 창업 후 7년이 지난 1995년에는 거래처와의 신뢰도 쌓이고, 시나브로 업무에 대한 인정도 받기 시작했다. 자연히 매출도 늘었다. 1995년부터 기별이 오기 시작한 매출 상승세는 2년 동안 이어졌다. 윤 대표는 “2년 동안 월매출이 7000만원을 웃돌았다. 월매출 150만원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 윤 대표는 임대 무허가 건물을 벗어나 자가 공장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은 곧 현실화됐다. 창립 9년 만에 대지 450평인 공장 부지를 구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윤종찬(오른쪽 두번째) 대표는 현재의 비엠티가 있기까지 직원들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그러다 급기야 1억원, 머지않아 2억원에 까지 이르렀다. 주문량이 급속도로 늘어나자 공장이 좁다는 것을 느낀 윤 대표는 2000년께, 부산 녹산공단에 500평짜리 공장을 추가로 설립한다. 하이퓨리티피팅에만 집중하기 위한 행보였다. 플랜트용 제품개발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 ‘피팅’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점은 비엠티에 있어 전환기였다. 이 때 부터 하청을 받아 일을 하기보다‘고유 브랜드’를 가져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만든 게 ‘Superlok’이라는 브랜드다. Superlok 상표를 등록하고, 반도체용 피팅 뿐만 아니라 산업용 피팅까지 생산하자 2003년 후반기부터 그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도 십 몇억에 그치던 매출이 2003년과 2004년도에는 각각 30억원대, 70억원대로 급등했고, 2007년 들어서는 100억원대 돌파의 기염을 토했다. 매출액이 100억원대로 들어서면서 코스닥 상장을 했고 상장 후에 경남 양산에 소재한 지금의 공장(6000평)을 올렸다. 공장 옆에는 2500평 정도 부지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양산 공장 가동 후 2009년 219억에 머물던 매출액은 1년 만에 400억으로 뛰었다. 윤 대표는 이 같은 매출 성과를 직원들의 공으로 돌렸다. 윤 대표는 “직원들이 한시도 제품개발 및 영업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직원들의 공도 있지만 사실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주효했다. 윤 대표는 “사업 분야를 확대하기 위해 꾸준히 발전ㆍ반도체ㆍ조선ㆍ플랜트 등 다방면을 공략 했다”고 언급했다. 비엠티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이 중에서도 ‘플랜트’다. 윤 대표는 “국내 EPC업체들의 해외플랜트 수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피팅과 밸브는 석유정제, 발전 시설 등에 빠지지 않는 부품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업황은 매우 밝다”고 말했다.윤 대표가 수상한 표창장 및 훈장증. 벤처기업진흥 및 중소기업진흥에 따른 평가다.
실제로 윤 대표는 2009년 ‘노바마그네틱스’라는 IT회사를 인수하여 IT 사업 진출의 전초기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노바마그네틱스는 연매출 20억~30억원 규모이며 윤 대표는 이 회사의 매출액을 100억원대로 끌어올려 상장시키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2007년. 코스닥에 상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윤 대표에게는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녹산공장에서 지금의 양산 공장으로 이전하던 때였다. 녹산공장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인데, 양산 공장 신축이 8개월이나 지연되고 말았다. 생산 공백이 생기자 매출액은 200억선에서 멈춰 섰다. 윤 대표는 “쓰지 않는 장비에 비닐을 덮어서 공장 건물 앞에 놔두고, 몇 달 동안 한숨도 못 잤다”며 쓰라린 기억을 떠올렸다. 현재에 이르기 까지 유독 잦은 우여곡절을 지냈지만 지난 기복이 되풀이 될 거라는 우려는 하지 않는다. 그 동안 쌓아온 ‘위기관리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엠티의 경영방침은 ‘살아있는, 성장하는, 진화하는, 신뢰받는 기업’이다. 윤 대표가 기간마다 목표를 다르게 설정하고 하나씩 쟁취해 나갔던 것은 이 같은 방침에 기인한다. 그러면서도 말은 아꼈다. ‘샴페인 먼저 터뜨리지 않겠다’는 철칙 때문에 창업 이래 준공식한 번 안했단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윤 대표의 강직함이 지금의 비엠티를 만들었다 싶다.이상윤 동양증권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플랜트·스마트그리드 수혜업종 미래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