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을 쓸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뒤돌아보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의 현기증이 지나간 마음의 흉터들을 어루만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시작되던 순간의 설레임과 그것이 익어가던 날의 황홀과 그것이 못견딜 그리움이 되던 날과 그것이 무너져내리던 날의 절망과 긴 그림자까지 사랑의 전경(全景)을 아주 멀리에 깔린 노을처럼 천천히 고개들어 바라보는 사람이다. 사랑이란 감정의 반대편에 서있는 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 혹은 무표정이다. 사랑이 정말 쓸쓸한 것은, 증오마저 지나가버린 지독한 치매증세, 백지화된 사랑, 사랑에 눈멀었던 마음의 안개 훤히 걷히고 이제야 제대로 차갑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낯설고 어색한 마음으로 망연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황량한 두 정신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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