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송강 정철 '장진주사'

한 잔 먹세그려, / 또 한 잔 먹세그려, / 꽃 꺾어 세어가며 무진무진 먹세그려. / 이 몸 죽은 후면 / 지게 위에 거적 덮여 줄에 매어 가나 / 호화로운 관 앞에 만 사람이 울어 예나, /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 가기만 하면 /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 소소리 바람 불 때 /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야 / 뉘우친들 어쩌리.송강 정철 '장진주사'■ 송년회와 송년회 사이. 작취미성(昨醉未醒)과 아취욕면(我醉欲眠) 사이. 폭탄과 해장 사이. 12월은 그렇게 메들리에 꿰어져 종종걸음친다. 어제와 오늘 사이, 출근길에 휴대폰 거울로 덜 깬 내 얼굴 본다. 1년중 가장 깨어있어야할 이 무렵에, 이토록 이취(泥醉)로 보내는 것은, 살이에 새겨지는 시간의 금이 아프기 때문인가. 자기를 속이며 얼른 불안의 계단을 내려가려는 심사일까. 생의 모든 것은 기념이건만, 잊어버리고 보내버리려는 리추얼들만 흥건한 날들이다. 이러다 가겠지. 이러다 말겠지. 문득 술취한 시인 박인환처럼, 혹은 이상처럼, 혹은 김수영처럼 짧은 시 한 구절같은, 의미없는 생을 쥐었다 놓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편집국 이상국 기자 isomi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